지난 3월 12일 국회에서 야3당이 공조하여 통과시킨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다가오고 있다.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로 기각결정의 가능성이 높게 예상되고 있지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대선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때에 열린우리당의 송영길 의원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주장을 폈다가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시하는 발언이라 하여 큰 비난을 받은 일이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재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성의 근원은 유권자들의 지지이다. 국회의 탄핵소추가 이번 총선에서 야당의 패배를 불러온 궁극적 이유도 따지고 보면 야당이 민주주의 원칙에 거슬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로서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국민의 여론을 존중하면서 행사해야 한다. 헌법이 탄핵소추권한을 부여했다고 해서 여론에 역행하면서까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합법적일 수는 있어도 결코 민주적이지는 않다. 더구나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도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국민여론을 살펴가며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의원들의 올바른 의정활동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민주주의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3명은 국회가 선출한 자를,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자를, 3명은 대통령 자신이 선발한 자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재판관은 한명도 없다.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한 재판관들은 간접적으로만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볼 수 있고, 대법원장의 지명을 받은 자들은 국민의 지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더욱이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으로 재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법조인 경력을 쌓았다. 일정주기로 재임용을 받아야 하는 인사시스템 속에서 고위직으로 승진을 하려면 정권의 수뇌부나 적어도 사법부 수뇌부의 눈 밖에 나는 판결은 내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민주적 정당성이 낮은 사람들이 국민직선 대통령의 하야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민주공화국 헌법임을 자처하는 우리 헌법의 중대한 허점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경쟁에서 야당 후보들을 물리치고 국민의 지지를 가장 많이 확보한 그 어느 공직자보다도 민주적 정당성이 높은 사람이다. 이런 대통령이 국민여론을 무시하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국민의 지지와는 거리가 멀고 게다가 일부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출세한 사람들에 의해 탄핵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 간에 민주주의 관점에서 대통령 탄핵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 합법성과 법질서 유지는 나라의 안정에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을 넘어 그 법의 내용이 얼마나 민주적인지를 따져보아야 할 때다.
/하태수.경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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