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다원화시대 국가와 사회 문제

독감 걸린 만화영화 같았던 17대 총선은 여당의 과반수 의석과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야당의 의석 확보, 그리고 민노당의 국회입성으로 끝이 났다. 정치인들이 멋(?)있는 정치를 하기위해 추해지기를 서슴지 않고 있을 때, 우리 경제는 끝없는 부진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갔다. 일부 업종의 수출호황을 제외하고는 경제파탄의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는데도 여야 모두 설득력 있는 경제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례없는 깨끗한 선거를 치렀다는 자부심의 뒤끝이 몹시 씁쓸하기만 하다. 경제를 바로 세우지 못하여 가정파탄과 각종 사회적 병리현상이 계속된다면 국가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제2의 IMF사태라는 현실적인 경제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경제는 그냥 두면 알아서 잘 돌아갈 것”이라는 대통령의 위험한 경제관에서 온 결과가 아닌가 한다. 노무현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만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 실업자를 구제하고 빈부격차의 양극화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하는 진보정치로 빈부격차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우리경제를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4·15 총선을 치르면서 우리 사회는 보다 다원화 경향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우리국가와 사회에 미치게 될 문제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선 사회적 갈등의 문제다. 기존의 기득권층과 신기득권층의 대립이 예상된다. 여기에서 신기득권층이란 진보여당과 민노당의 진출로 급격하게 부각되고 있는 저소득층과 노동자층을 의미한다. 또한 소외층 중에서도 신기득권층과 여전히 남아 있는 잠재된 소외층의 갈등문제가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권위와 권력 대 정보화와 인터넷, 보수 대 진보, 노·사대립 등의 갈등 또한 사회적 갈등의 문제로 대두되었다.

둘째, 경제적 혼란의 문제다. 어느 언론지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기업인의 30%가 열린 우리당의 경제정책 방향이 ‘분배중심’으로 갈 것으로 전망했다. 강성노조에 대해 호의적인 정당이 힘을 얻은 이상 분배와 복지만을 강조하는 현실성 없는 정책들이 제시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분배의 원칙이 능력과 노력의 대가에 의한 내재적 형평성 보다 분배라는 외형적 형평성을 강조함으로써 결국 사회주의적 경제원칙이 주도할 위험이 커졌다. 이는 기업인들의 투자의욕을 꺾어 빈부계층간의 골만 더 깊어질 우려가 있다.

셋째, 문화적 갈등이 예상된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유교문화의 전통적 사회질서가 변화하고 있는 점을 확연히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성·세대·계층·지역간에 일정하게 인식돼오던 전통적인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치에서 감성·이미지 정치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이러한 갈등들이 계속 표면화되고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원수가 전체의 13%를 차지해 여성은 정치를 잘못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는 계기를 마련했고,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간에 이념과 정책 성향의 차이를 보여 세대간 갈등증폭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원화란 소수의 엘리트가 아닌 다양한 집단들 간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지는 사회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이제 다원화 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정말 우리사회는 과거 어느때 보다도 다양한 집단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발전적인 차원에서의 경쟁과 협력이 아니라 첨예한 대립과 극심한 적대감만을 불러 있으키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서민들의 불안은 고조되어 가기만 한 상황에서 지금의 변화추세는 오히려 우리사회에 커다란 위험을 가져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즉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만 다원화되어 가고 있을 뿐 이지, 사회적·문화적·경제적인 부분의 갈등요소들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의 다원화가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희망적이기 보다 우려스러운 마음이 더 앞선다.

/박범준.럭키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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