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인 화성은 조선조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부친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의 화산(지금의 화성시)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 아래 현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하게 되었다.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10년 전인 1794년 1월에 착공해 2년 9개월에 걸친 공사끝에 1796년 9월에 완공되었다. 규모는 성의 둘레 5,744m, 면적은 130ha로 당시 거주 인구는 약 1천가구 5천명 정도였다.
아울러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소멸되었고, 현재 시에서 많은 복원 노력으로 화성행궁의 대다수가 복원 되었으며 계속해서 완전 복원을 위해 노력중이다.
당시 화성은 지금의 신도시처럼 베드타운의 형식이 아닌 완전 자족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소중한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성안에 살고 있는 지금의 城안 사람들인 우리가 해야할 역할과 자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문화재 보호라는 명분 때문에 타 지역의 거주민들 보다 여러 가지 규제에 묶여 제약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지역 주민들의 건물 신축은 물론 증·개축까지도 규제를 받다보니 생활환경이 낙후되고 또한 도시의 팽창으로 100만이 넘는 거대 도시로 성장하면서 현대식 대형 상권이 외곽으로 분산 배치되어 재래시장 형태의 이 지역내 상권이 위축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수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수원은 타 지역에 비하면 시에서 재래시장인 남문·지동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자하여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시장관계자의 말을 들은바 있다.
이 외에도 성곽 인접지역을 매수하여 공원과 주차장, 박물관, 광장 등을 조성하는 계획과 수원천변을 정화하는 계획 모두다 城안 사람들과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함일 것이다.
지금 시에서는 위에서와 같이 이곳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城안 사람들도 이에 발맞추어 날로 늘어나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조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인 것이다.
수원천변의 무질서한 상행위, 쓰레기 무단투기, 재활용품의 철저한 분리수거, 차량의 불법주차, 불법 노상적치물 등 각종 불법 무질서한 행위를 앞장서서 근절하고 계도해야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현재를 사는 城안 사람들은 물론 미래의 城안 사람들을 위함일 것이다.
/민병구.수원시남향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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