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용시설 내 계구사용의 불가피성

최근 교도소 내 계구사용에 대하여 신문 방송이나 인권기관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마치 교도소는 세상변화의 물결을 외면하고 아직도 일제 감옥시절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것 처럼 흔히들 말한다. 인권유린과 가혹행위의 사각지대인데도 보안기관이라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는 것으로 잘못 비추어지고 있는 것을 일선 교정인의 한 사람으로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수용자 대다수가 그런 것은 아니나 개중에는 낳아준 부모도, 가르친 선생도, 이 사회도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는데 실패한 사람들로서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범법행위를 자행함과 인간으로서 대접받기를 포기하여 참으로 관리하기가 힘든 수용자들이 있다. 그들의 수용시설내에서의 생활은 밖에서 보다도 더욱 포악하고 위태로운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이를 알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 모든 것이 수용관리에 대한 불만보다는 사건의 공정한 수사의 미흡, 억울함, 수용자간 상호마찰, 재판의 불이익 외에 정신적·사회적·가정적 원인에 의한 충동으로 자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데 기인되는 것이다. 이를 제지하고 발생방지를 위한 수단으로 수갑과 포승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행위 뒤의 처벌 수단으로 취해지는 것이 아니고 사전 보호 차원에서 사용이 불가피한 최소한의 조치임을 알아야 한다. 자살과 자해의 우려가 있어 방지 및 예방의 수단으로 계구가 사용되는 것을 벌칙 수단으로 보아서는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포승과 수갑을 사용해 자살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을 인권운운하면 사용을 안해 자살이 이루어졌다고 하면, 그 때는 자살을 하도록 방치했다면서 직무유기나 근무태만으로 징계사유가 될 것이며 계구를 사용해서라도 자살을 막았어야 할 것 아니냐고 질타가 있을 것이다. 국가기관에 수용을 하면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을 죽도록 그냥 놔두는 게 인권존중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전국 45개 교정시설에 5만~6만 여명이 수용되어 있는 속에 30명 정도가 포승과 수갑으로 묶여 있는 것은 그에 합당하고 적법한 제지수단과 보호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사용된 것이지 이유없이 무고하게 묶어 놓은 것은 결코 아니다.

수년전 신창원 사건과 영등포 호송차량 탈주극 사건으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불안에 떨었는가? 이와 같이 수용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각종 사건사고를 유발하는 행위에 대하여 행형의 질서유지와 구금확보를 위해 취해지는 절차임을 사회는 새롭게 인식하여야 한다. 교도관들이 무지몽매하게 경우와 이치에 맞지 않고 눈물과 인정도 없이 수용자를 기분내키는대로 마구 다루고 관리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회적 인식도 안 좋은 열악한 근무 여건에 죄인도 아니면서 죄인과 함께 죄인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 교도관들이다. 오직 성직자적 사명의식을 갖고 재소자 교정교화와 갱생복귀라고 하는 큰 뜻을 실현하기 위해 휘어진 것을 바로잡고 똑바로 펴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준법정신이 투철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수용자를 교정교화 하기 위해 묵묵히 음지에서 일하고 있다. 이 사회에 법이 없고 교도소가 없다고 한다면 동물의 왕국같이 약육강식의 무질서와 혼란한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범죄예방 효과와 범죄자로부터 이 사회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교도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권유린의 사각지대가 아닌 수용자의 갱생복귀 산실임을 거듭 인식하여야 한다. 응보형주의의 구시대 관념에서 탈피된 목적형주의의 신형사정책을 이행하는 국가기관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하수종말처리장과 같이 각종 범죄로부터 오염된 사람을 최대한 정화시키는 없어서는 안될 국가 기관에서 사용하는 적법절차의 계호기구 사용은 무책임한 감상으로 접근해선 안되는 인명존중의 불가피한 조치인 것이다.

/이재수 여주교도소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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