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호와 문화예술공간

‘서호 납줄갱이’를 아시나요? 서호 납줄갱이는 수원의 서호에서 살고 있다가 1913년 미국의 저명한 어류학자인 조던박사에게 채집되어 신종으로 발표된 후 서호 납줄갱이라 이름 지어진 물고기다. 다 커봐야 길이가 5cm를 넘지 못하는 자그마한 물고기로 한국특산종이다.

그러나 1936년 이후 수원의 서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있는 물고기다. 한국특산종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그 종이 지구상에서 멸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본번호 4566호.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서호 납줄갱이의 표본번호다. 그것도 단 하나만이 외롭게 남아 서호납줄갱이가 지구에 존재했었다는 증명을 하고있는 것이다.

서호는 지금보다도 그 옛날이 수원 시민의 사랑을 더 많이 받었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인 1960년대만 하더라도 서호는 수원 최고의 유원지였다. 변변한 공원이 없던 시절 수원시내 각 학교의 봄·가을소풍은 물론 가족 나들이에도 첫 손꼽히는 곳이 서호였다.

한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수영을 하느냐 북새통을 이루었고 겨울이면 두껍게 얼은 호수 위에서 얼음을 지치고 혹은 썰매를 타며 놀던 곳이었지만 1970년대 중반 부터는 더 이상 서호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찿을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 몇년 뒤에는 철조망으로 출입구를 봉쇄해버려 들어갈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이렇게 폐쇄된 서호는 급속도로 썪어 들어가기 시작해서 1980년대에 와서는 악취가 진동하는 죽음의 호수가 되어버렸다.

서호 옆에 있는 KT&G 수원공장(옛 수원연초제조창) 자리를 전시장을 비롯한 공연장 박물관 등을 갖춘 복합적인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건축가 김동훈씨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불과 한달 남짓 사이에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며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수원은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발전한데 비해 문화예술공간은 그대로 여서 문화예술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8만여평의 넓은 대지에 공원을 갖춘 복합적인 문화예술공간이 세워지고 그 옆에 있는 서호를 같은 권역의 문화 공간으로 조성한다면 수원은 세계적인 문화예술공간을 갖춘 꿈의 도시가 될것이다.

KT&G 수원공장은 수원연초제조창이란 이름으로 1971년 서호천 옆에 자리 잡아 약 30여년간 서호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가진 업체다.

수원시민의 힘으로 그 자리를 공원을 비롯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꾼다면 그 자체로도 뜻 깊은 일이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길이 남을 것이고 또한 서호 납줄갱이에 진빚을 조금은 갚게 되는 일이라 생각된다.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는 단기적으로나 가시적으로 투자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또한 이런 일에는 많은 문제점과 적지않은 어려움과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와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문화예술공간 1㎠ 사기운동’과 같은 시민운동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것이다.

90여년전 이 땅의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소중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미국인 조던 박사처럼 우리도 후세에 길이 남을 문화유산을 가꾸도록 해야한다.

/남 기 성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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