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실학축전에서 얻은 것

실학축전이 10월 3일 끝났다. 긴 준비과정에 비하면 닷새의 축제는 허망하리만치 짧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흔한 모방적이고 소비적인 축제와는 달리 창의적인 축제는 잔치를 마치고 나면 무언가가 남는다. 계속 오늘의 삶에 신선한 공기처럼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 사는 재미를 주고 삶에 활력이 되고 감동이 있는 축제, 지친 일상을 벗어던지고 해방감과 신명이 있는 축제, 인심과 초월적 영성이 공존하는 불균형의 조화가 축제의 본질이다.

요즘 같이 소비성 축제가 태반인 때에 실학은 고루하다. 이 고루한 주제를 살아있는 축제의 정신으로 바꾸는 재주가 축제에는 있어야 한다. 임진택 실학축전집행위원장은 실학을 ‘실용·민생·개혁’의 화두로 풀었다. 놀라운 통찰력이다. 오늘날에도 가장 중심이 되는 뜨거운 화두가 이 세 단어라면 실학정신의 재해석은 성공한 셈이다. 실학축전이 실학을 현재 진행형의 화두로 골동품 창고에서 끌어내서 볼거리·놀거리·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생존의 기본인 물질생활 안에 정신세계의 근본이 있다는 깨달음이 실학이었듯이 오늘날 시민생활 한복판에서 실학 정신을 찾으려 한 것이다.

지금까지 경기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실학을 현양하고 고증하고 재조명하려는 연구 노력들이 없었다면 아마 실학축전을 치르는데 풍부한 자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낙성연 재연, 실학서예탁본전, 실학바로알기 입체전, 학술 심포지엄, 실학유물체험마당 등은 실학의 학술적 연구가 밑받침이 된 행사들이다. 또 다른 유형은 실학이 꽃피웠던 동시대인 영·정조시대의 문화를 주목하고 재현하였던 행사이다. 산대희 재연이 이 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은 실학의 현재성을 찾는 행사로 여성실학-축제로 만나는 규합총서, 실사구시 에코실용박람회, 명사들의 특별공연 ‘변학도의 생일날’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학을 주제로 한 순수 창작물이 있다. 실학창작판소리, 화성신시 그리기, 역사극 ‘정조대왕’ 등이 그것이다. 무엇하나 만만한 행사는 아니다. 과거의 재연, 현재성의 확인, 창조적 모색을 고루 차려 놓은 축제이니 관람자가 주워 담기에 따라서는 많은 공부와 감동을 동시에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몇가지 꼭 풀어야할 숙제가 보인다. 관람객이 행사 규모에 비해 적었다. 이는 실학이란 주제가 생소한 면도 있겠고 첫 행사라는 인지도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집객을 위한 다양한 홍보방안이 집중화 되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도 이번 실학축전에 객이 아니다. 미술감독을 맡고 전체 축제 시각이미지를 조정했던 사람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함께 책임져야하는 입장이다. 나는 이번 작업에 참여하면서 실학의 엄청난 정신문화유산에 놀랐고 이를 오늘의 문화로 계승시키지 못해온 무관심과 게으름에 책임을 느낀다. 실학자가 추구한 정신문화를 온전히 연구하지는 못해도 나 같은 장인의 처지에서 적어도 시서화 예술의 현재성을 더 따졌어야 했고, 실학에 담긴 예술철학 그리고 당대의 동시대 문예부흥과 연관을 더 깊이 탐색했어야 했다.

왜 실학시대에 문예부흥이 일어났고 경제발흥과 함께 했는지 우리는 종합적으로 다시 사고하며 상상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실학축전에서 우리는 삶의 종합성을 얻었다. 물질과 정신, 학문과 문예, 역사와 미래 사이 너무 멀어져버린 답답한 현실을 극복해보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실학은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꿈이며 못다핀 미완의 이상이며, 실학축전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동방의 르네상스다.

/김봉준 화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