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민이 부럽다. 인구는 날마다 늘어나고, 땅값도 계속 오르고,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데다, 학문과 사상, 철학과 문화까지 가장 높은 수준의 역사를 지닌 곳이 경기도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통설로 정해진 사실의 하나는 조선 5백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학문과 사상은 왕조의 후기에 이룩된 실학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실학사상의 대표적 학자로 세분을 드는데, 한분은 반계 유형원(磻溪 柳馨遠)이요, 두 번째 분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이며 세 번째 분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다. 반계는 그의 학문을 전라도에서 완성했으나 경기도에 묘소가 있고, 후손들이 과천에서 살았다고 한다.
성호는 안산에서 살면서 거기서 학문과 사상을 이룩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서 경기실학의 확고한 바탕을 다진 분이다. 다산이야 다 알고 있듯이 경기도에서 태어나 자라고 커서 대학자가 된 뒤, 경기도에 묻혀 경기도를 자랑스럽게 만든 분이다.
그들뿐인가. <동사강목> 의 대저를 남겨 역사관을 바르게 세운 순암 안정복이나 추사 김정희도 경기도에서 학문과 사상을 완성한 희대의 학자들이었다. 담헌 홍대용이나 연암 박지원 같은 분들도 서울에서 살았지만 경기도와 무관할 수가 있겠는가. 담헌의 스승은 미호 김원행으로 경기도 양주에서 후학들을 길러냈고, 담헌이야 경기도에서 학문을 이룩하고 연암도 미호의 문화를 출입했던 분이니, 이 또한 경기도와의 인연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처럼 기라성 같은 학자 모두가 실학의 대가들이니 경기도가 실학의 도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사강목>
문제는 과연 경기도가 실학의 도라는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실사구시의 논리로 도정(道政)은 제대로 펴고 있는가, 도민들의 마음에 참다운 실학정신이 담겨 있어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실학이라는 논리로 경기도의 정체성은 확보되어 있는가. 다산의 <목민심서> 라도 제대로 읽어 경기도의 공무원들은 다른 지역의 공무원들보다 청렴하고 도덕적인 봉사행정을 펴고 있는가. 실학사상의 중심에 있는 위민(爲民)정신을 제대로 발휘해서 경기도 도민들이 다른 지역 주민들과는 다르게 대접받고 있는 것인가. 목민심서>
이런 모든 질문에 과연 그렇다 하더라도 수긍할 주민이 얼마나 될까. 실학자들이 활동한 역사가 많지 않은 경상도 주민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충청도나 강원도의 주민들과의 차이는 있는 것인가. 가장 많은 실학자들의 고향이라고 자부하는 광주(廣州) 시민들은 다른 지역주민들과 차이가 있을 것인가. 이런 문제도 명쾌한 답을 듣기는 어려운 현실이 아닌가.
이제는 경기도가 실학의 도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다짐이 있어야 한다. 실학현양 사업이나 실학축전 등의 행사들이 예전에 비하여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행사만으로 끝나는 현양사업이어서는 안 된다. 실학박물관도 짓고 실학에 관한 유물이나 유품의 수집보관도 중요하지만 실학의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도민들이 실학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내걸고 실학에 관한 교육이 제대로 행해지고 실학에 관한 저서들을 독파하는 독서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실학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지 않겠는가. 초·중등 학교에서부터 다른 도와는 다르게 훌륭한 실학교재를 개발해서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 최소한 경기도에 있는 대학에는 실학강좌가 개설되어 실학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한 일들이 전혀 진전이 없는데 어떻게 경기도가 실학의 도일 수 있겠는가. 물론 형식이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현양사업을 통해 여러 형식이 전개되면서 알곡이 익어가듯 내용이 가득 채워지는 때에야 경기도는 실학의 도가 될 것이다.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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