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교수와 나는 선진국과 후발국과의 격차가 시간이 흐르면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신고전(新古典)경제학의 절대적 수렴설(absolute convergence)의 한계와 비현실성을 주장하면서 일국의 교육수준과 과학기술수준에 따라서 격차가 줄 수도 있고 더 벌어질 수도 있다는 조건부 수렴설(Iconditional convergence)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나의 ‘기업파워이론(The firm power theory)’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자기는 기술변화를 경제성장·발전의 결정인자로 보는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의 지지자이지만 결국 기술변화가 일어나는 현장은 기업이므로 자기의 이론도 결국 기업레벨로 끌고 내려가야 하는데, ‘기업파워이론(The firm power theory)’은 모르긴 해도 자기의 그런 전제와 부합된다며 나를 부추겨 주었다.
내가 그를 두 번째 찾은 것은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출간한 졸저 ‘기업파워는 어디에서 오는가?’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제7회 자유경제 출판문화상 수상자로 결정 됐다는 통보를 받은 지 얼마 뒤인 1996년 역시 여름이었다.
3년 전보다 건강이 몹시 안 좋아져서 학교에는 가끔밖에 안나온다는 말에 따라 크리스교수의 수제자이며 SPRU의 교수로 있는 홉데이 교수하고만 장시간 얘길 나누고 런던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호텔로 전갈이 오길 크리스교수가 내가 온다고 해서 모처럼 학교에 나와 나를 기다리다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내 탓은 아니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해서 전화연락을 했더니 홉데이 교수를 만났으면 자기를 만난 것과 같다며 이해해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평소 그가 한 일을 되새겨보았다. 산업 중에서 제조업이 국부(國富)에 가장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제조업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국왕실에 건의해 여왕이 직접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조업을 유치하게 유도했다는 것이며 그 일환으로 한국의 삼성과 LG가 영국에 투자하게 되었고, 영국 경제는 그 이후부터 호전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당시 그의 설명이었다. 부품·소재산업의 취약성으로 인해 우리의 산업활동이 활발하고 수출이 늘면 늘수록 노노현상(勞勞搾取)이 심화되고 2천억불이 넘는 대일무역 누적적자규모가 눈덩이처럼 더 가속적으로 불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고민도 않으면서 정권이 바뀌거나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전략산업을 굴뚝산업보다는 벤처산업, 정보통신, 서비스산업, 또는 무슨 무슨 산업 등으로 바꿔야한다며 열을 올리는 사이비 전문가들을 볼 때면, 난 지금도 먼저 간 크리스의 충고를 잊을 수 없다.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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