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원예술인 100선’에 대하여

“예술 작품은 영혼의 꽃이다”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작품의 성향이나 완성도를 떠나서 창작을 한다는 것은 피와 살과 영혼을 소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예술 작품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수원예총에서 발간한 ‘수원예술인 100선’이라는 책을 보았다. 표제를 보는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다. 특정예술인을 선정했다는 취지도 마음에 안들었지만 회원간 위화감이 조성될 우려가 있는 책을 발간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드는 건 나 뿐이 아닐 것이다. 수원예총 산하 10개 단체에 가입된 회원이 약 1000명인데 이중 100명을 선정한다는 것은 다수에 대한 주최측의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예술인으로 선정된 사람은 예술인이고 제외된 사람은 비예술인 이라는 말인가.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더 황당한 이유로는 첫번째, ‘예술인 100선’이라는 한정된 숫자가 주는 거부감이다. 예술인 중에 예술인을 선정하겠다는 취지도 잘못된 생각이지만 부득이 수원예술사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추진해야 했다면 선정기준을 좀 더 엄격히 하여 그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 모두를 예술인으로 인정해야 합당하다. 그런 면에서 인원수를 한정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두번째, 선정기준에도 문제가 있다. 예술인을 선정하는 일이니 만큼 선정위원도 예술성을 엄정히 평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는데, 그렇다면 선정위원의 선정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선정위원들은 수원에 거주하는 모든 예술인들의 작품을 탐지했으리라 믿는다. 발간계획 공고를 보면, “선정의 공정성을 위해 공모접수와 선정위원회 추천접수 두 가지 방식을 적용해 50%씩 선정하기로 하고 예술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작가들을 포함한 예총 및 민예총 회원 중 10년 이상 수원지역에 활동하면서 지역예술 발전에 이바지한 예술인이며, 도덕적 문제 제기 소지가 있는 경우는 제외된다”고 공지 하였다. 물론 위의 조건에 합당한 사람들을 선정했을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이 선정 되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부득이 제한이 필요했다면, 거주의 햇수나 작가 인지도보다 예술성에 둔다는 구체적인 조항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예술의 본질에 가깝다는 생각에서이다.

공정성 여부에 의혹이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위원장 이창식(경기신문 주필), 위원으로는 홍기헌(경기언론인클럽 이사장), 양훈도(경인일보 논설위원), 이연섭(경기일보 문화부장), 박정임(중부일보 문화부장), 김의성(건축사), 남부희(화가·협성대 교수), 최근순(국악인), 김상용 전 수원시립교향악단 단무장 등 9명의 선정위원과 이석기 수원예총 기획단장을 비롯한 10명의 편집위원이 참여하였음을 밝힌다.

세 번째, 관료주의적 경영체제를 지양해야 한다. 다수의 의견 수렴은 공정성의 필요조건이다. 현재 수원예총 회원 수만도 1000명에 이르는데 만일 공문을 발송했다면 몇 명에게 보냈으며 미가입 예술인 경우는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그리고 책은 어떤 사람에게 몇부나 배부 되었는지 혹 발간 관계자를 비롯한 일부만 나눠 가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더구나 비매품으로 발간되어 일반인들이 접할 기회는 더더욱 희박한데 이런 사안들은 대화의 공간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멀다는 생각이 든다.

네 번째, 예술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단체라면 작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경제적 여건이 안되어서 예술적 역량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고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작가들을 위해 발표의 기회를 부여하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정인을 선정하고 차별화 하여 회원 간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단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보다 다양한 예술인들을 끌어안기 위하여 이런 책을 발간하기 까지는 많은 고민과 갈등을 거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자칫 주최측의 실적을 남기는데 그칠 우려가 있는 행사보다는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행사를 추진했으면 한다.

끝으로 논지에서 조금 벗어난 얘기이지만 한 마디 부언하고 싶다. 현재 한국문단은 한국문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있는데 이런 단체를 지칭할 때 흔히 주류냐 비주류냐 혹은 이쪽이냐 저쪽이냐 라는 이분법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가끔 듣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원예총은 자칫 편협된 운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언어사용부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토분단도 안타까운데 고차원의 삶을 추구하는 예술세계 마저 분열을 조장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조동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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