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그리니치행 유람선에서

국내의 한 국책(國策)연구소에 재직 중이던 1980년 가을쯤 혼자서 해외출장 도중에 런던에서 일요일을 맞은 적이 있다. 주일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한 후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무심히 템즈(River Thames)강을 향해 걷다가 그리니치(Greenwich)행 관광선이 눈에 띄어 그냥 올랐다. 어릴 적 사회시간에 배운바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떠올라 문득 올랐던 것이다.

배는 제법 컸는데도 승선손님은 별로 많지 않았고 시간이 되자 배는 출발하였다. 출발 얼마 후에 중년이 넘은 한 미국인 부인이 혼자 여행 중이냐며 다가와 우리는 같이 관광하기로 했다. 이런 저런 얘길 하며 강 양변에서 펼쳐지는 19세기 Pax 브리태니카 시대의 역사적 해적 유물들을 관광하며 템즈 강의 하류로 내려가고 있었다. 약 한 시간 30분 정도 후에 도착한 그리니치에서는 마침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국화(菊花)전시회가 대규모로 열리고 있었다. 참으로 특이하고 특별하게 키운 국화꽃의 대 잔치를 그곳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그리니치 천문대도 들러보고 또 그 드넓은 공원과 우람하게 솟아있는 거목들과 그 나무의 열매를 따려는 아이들의 여러 가지 몸동작들도 그 미국인 부인과 한가로이 즐길 수 있었다. 그 미국인 부인은 미국의 미시간(Michigan)에서 사는데 마침 텔아비브(Tel Aviv)에 있는 친구한테 가는 길에 잠시 관광하고 가려고 런던에 들렀다는 것이었다. 난 별 생각 없이 그러냐고 받아 넘겼다.

시간이 되어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노을 지는 템즈 강의 정취를 느끼며 런던으로 되돌아왔다. 도착해 헤어지기 직전에서야 나 자신을 그녀에게 소개하려고 나는 명함을 꺼내 막 건네려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럴 필요 없다며 ‘미스터 김, 난 당신을 잘 알고 있어요. 또 무얼 하는지도 잘 알아요’ 하는 것이었다. 난 순간 나의 온몸이 땅에 붙어버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 여자가 어떻게 날 안단 말인가. 같이 구경하는 동안 난 한 번도 나에 대하여 언급을 한 적이 없었고 또 그럴 이유도 없었다.

전혀 뜻밖의 그녀의 그 말에 난 정말 너무나 놀라고 놀라서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발이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잠시 서서 그녀가 날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다. 그러자 나의 놀람은 더욱 커졌다. 아니 그러면 그 여자가 미 CIA 요원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텔아비브를 꺼낸 걸 보면 혹시 이스라엘 모사드(Mossad)의 첩보원이었단 말인가.

당시 나의 여행목적은 원자력 발전용 핵연료(核燃料)가공시설의 건설과 관련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었고, 내가 사용한 명함은 핵연료개발공단(Korea Nuclear Fuel Corporation)의 계획 및 관리이사(Director of Planning & Control)였다. 명함의 명칭으로 봐서 한국에서 뭔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미국이나 이스라엘에서 생각했던 모양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그래서 자연스레 내게 접근해와 훤히 다 보고 알고 있으니 혹시라도 딴 짓을 말라는 암시를 던진 것이로구나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갑자기 불안해졌다. 언젠가 런던에서 우산꼭지에 독침을 넣어 스파이를 살해하는 영화를 본 기억도 있고 해서 갑자기 신변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곧 나의 미션이 별것 아니란 걸 알고는 점잔하게 경고하고 사라져 간 것을 보면 안심해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이 돌긴 했지만 난 빨리 런던을 떠나고 싶었다.

당시 미 카터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가 공식화된 상황에서 미국 내의 한국인 핵전문가가 미 정보부에 의해 살해됐었다느니 하는 유언비어도 돌았던 터이다. 공교롭게도 나의 출장시기가 그 직후인지라 핵연료와 관련된 친구가 핵시설을 찾아다니니 한 번 그 뒤를 밟아보았던 모양이었다. 핵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첨예한 국제적 이슈인가 보다.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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