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내가 만난 구공산권 사람들

지난 1996년께 몰디브(Maldives)라는 인도양(印度洋)상의 휴양지에서 몇 날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마침 커다란 유람여객선 한 척을 빌려와 3개월여를 지낼 예정에 있다는 30여명의 러시아인 중에서 한 친구와 잠시 얘길 나눌 기회가 있었다. 유난히 이글거릴 뿐만 아니라 살기(殺氣)까지 느껴지던 그 친구의 눈동자에서 그들이 범상한 친구들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선 방갈로 방들을 3개월씩이나 장기(長期)로 빌려서 사용하는데 드는 돈의 규모라든가 유람선까지 빌려 왔다는 사실부터 그러했다. 1985년 구소련 연방이 해체된 후 러시아는 곧 미국의 마피아 수중에 들어가 마피아와 끼고 무슨 비즈니스든지 다한다는 걸 어디선가 본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바로 그런 친구들이구나 하는 감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구공산권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었다.

이후 지난 2003년 겨울 태국 파타야(Pataya)해변에 새로 지운 휴양호텔에서 한 달간을 머물 예정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온 20여 명 정도의 중년 이상의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1박에 100달러가 넘는 방을 단체로 사용하는 그네들의 씀씀이에서 그들이 러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의 기준으로도 대단한 부자임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인천공항 세관에서 꼬치꼬치 묻는 세관원의 질문에 답하며 한참만에야 어렵게 통과하던 러시아 무희(舞姬)로 보이던 그 예쁜 여자와 그들은 너무나 딴 판이었다. 아마 이들도 마피아를 낀 비즈니스로 벼락치기 부자가 된 집안의 사람들로 생각되었다. 소련연방이 해체 후 러시아에서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한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돈의 여유는 있어 보이는 그들 모두에게서 한결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표정도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오랫 동안 공산주의 사회에서 감시(監視)와 주시(注視)를 당하며 살다보니 저절로 무표정의 인간들이 되어버렸는가 보다. 그들 중엔 다소 젊은 남녀도 몇이 끼어 있었는데 그들은 약간의 감정과 표정을 담으려는 듯 보였지만 그들도 대체로 그러했다. 아무튼 내 눈에 비친 그들은 그야말로 사람이라 볼 수가 없었고 마치 밀랍(密蠟)인형들 같았다. 이것이 구공산권의 사람들에 대한 나의 두 번째의 인상이다.

지난해 여름 와이프와 함께 겸임교수로 있는 연변과학기술대학에 특강 차 갔다가 장춘(長春)으로 올라가 그곳의 주교좌성당(cathedral)엘 들러볼 수 있었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성당이었지만 공산화되던 1930년대에 문을 닫은 후 50여년이 지난 1980년대 들어 등소평이 등장한 이후에야 다시 성당 문을 열었다고 한다. 80세가 넘었지만 준수해 보이는 그곳 주교(bishop)와 한족(漢族)이면서도 조선족(朝鮮族) 선교를 위해 한국어를 배웠다는 중국인 신부 그리고 말은 서로 안 통하지만 홍조 띤 얼굴과 친절을 담은 미소를 내보이던 두 수녀(修女)에게서는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느낌을 받았다. 구공산권 치하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에이~’ 하며 두 손을 내 졌던 신부의 몸짓에서 구공산사회의 면모가 어떠했는가를 느끼는 듯 했다. 이것이 구 공산권의 사람을 대하며 가진 세 번째의 인상이다.

구공산권 사람들을 대하면서 유물론(唯物論)의 공산이념(共産理念)과 통제된 사회체제에서 계획경제(計劃經濟)에 사람들이 길들여질 때 어떻게 되어지는가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이는가를 또 확인하면서, ‘진리(眞理)가 너희를 자유(自由)케 하리라(The Truth will set you free)’ 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김 인 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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