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부가 발표한 동북아균형자론을 둘러싸고 실효성 여부와 미칠 파장에 대하여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100년 전에 조선이 처한 상황과 비교하려는 논의도 있다.
그런데 우리역사에서 동아시아의 중핵에서 조정역할을 해서 성공한 나라가 있었다. 고구려이다. 광개토대왕은 광개토라는 시호와 일반인들의 인식처럼 단순하게 영토를 넓힌 임금이 아니었다. 그가 정치한 시대는 21세기처럼 국제질서가 전면적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한족은 패배하여 남쪽에서 피란정권으로 연명하였고, 북쪽은 유목종족들이 각축하면서 나라를 세우는 5호 16국 시대였다. 고구려는 연나라와 요동지방 쟁탈전을 벌이고, 남쪽에서는 백제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대왕은 이러한 대분열과 열전의 국제질서를 이용하여 고구려가 신질서의 중핵에서 역학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국가의 발전표로 삼고 다양한 정책을 구사하였다.
남쪽으로는 백제의 수군을 동원하여 한성을 공격하고, 경기만을 점령하였으며, 보병과 기병을 파견하여 신라와 가야, 왜에 대하여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북으로는 연을 공격하여 요동을 완전하게 확보하였고, 연해주 일대도 영토로 편입시켰다.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한 장수대왕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에 백제의 서울을 점령하였고, 남진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경기만에서 소백산맥 이남을 거쳐 삼척선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 이북을 영토로 만들었고, 황해중부이북과 동해중부 이북의 해상권을 장악하였으며, 만주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하게 하였다. 명실공히 대륙과 해양을 장악한 해륙국가를 만들어 이른바 동아지중해(東亞地中海)의 중핵이 되었다.
장수대왕은 남북으로 분단된 중국(즉 북경정권, 상해정권)의 분열과 갈등을 이용하여 철저한 등거리 외교를 추진하고, 한편으로는 몽골유목국가인 유연과 남쪽의 송나라를 연결시켜 가운데의 북위를 압박하였다. 뿐 만 아니라 백제 신라 가야 왜 등 주변부가 외교를 통해서 국제질서의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시도를 해상봉쇄로서 방해하였다. 즉 정치 외교적으로 동아시아의 중핵(core)에서 모든 나라들 간의 균형뿐 만 아니라 역학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동아시아의 모든 육로와 바다길이 만나는 물류의 허브(hub)에서 중계무역 등 무역활동을 활발하게 벌였고, 또한 다양한 종족들과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문류(文流)의 인터체인지(IC)역할을 추진하면서 국제성과 정체성을 조화시킨 고유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광개토대왕과 장수대왕은 동아시아 질서가 변화하는 과정과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지녔고, 전통적인 육지위주의 질서를 기본으로 삼고, 새롭게 성장하는 해양적인 질서를 수용하면서 복합적인 정책을 구사했다. 즉 군사력과 해양력을 토대로 정복활동을 펴면서 지정학적으로 중핵(core)위치를 확보한 후에 모든 나라들을 연결함으로써 거대한 網(net-work)을 단계적으로 구축했으며, 결국은 성공했다.
국가정책과 발전모델은 집단의 생명과 존속이 걸린 만큼 관념적인 이상이나 아이디어 수준으로 제안하거나 공명심에 취해 졸속하게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상에서 유효성이 있고 검증된 모델들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고, 급변하는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을 하면서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21세기에 들어서 국제질서가 전면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 과정과 결과에 따라 앞으로 50년에서 100년간에 걸친 우리민족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윤 명 철 한국해양문화연구소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