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은 꽃도 고울 뿐 아니라 그 꽃에는 꿀이 많이 들어 있어 좋은 밀원식물(蜜源植物)이기도 하고 그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기생(寄生)하면서 식물이 직접 이용할 수 없는 공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질소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화학적으로 제조된 질소비료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곡류재배를 위한 매우 중요한 질소공급수단이기도 했다.
예전에 우리나라 농가가 화학적으로 생산된 질소비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능력이 없던 때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운영이, 특히 벼에 질소를 공급하는 수단으로 쓰인 적이 있었다.
그 때 농가에서 자운영을 그런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농가에 일손이 오늘날에 비해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사람들에게 농사 이외의 다른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농촌에 일손이 풍부했던 것이다.
그 시절에 농촌에 살았던 이들의 추억 속에는 보랏빛 자운영 꽃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이들이 고향을 생각할 때 이 꽃이 마음의 망막을 스쳐지나갈 것이다. 그 꽃에 대한 그리움도 살아날 것이다. 그러면서 자운영이 사라진 세태를 야속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태의 변화를 야속하게만 여길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변화의 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농촌의 형국(形局)을 살펴보자. 예전에 비해 농촌에 사는 사람의 수도 확연히 줄었을 뿐 아니라 (1960년대만 해도 농촌인구가 전체 인구의 60%를 웃돌았다. 지금은 그것이 10%도 안 된다.) 농업에 종사하는 젊은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현상을 오늘 우리나라 농업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농촌을 지키고 있는 노동력이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예전에 비해 크게 위축되고 저하됐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생산성은 크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이다. 1961년과 2004년을 비교하면 쌀 생산량은 1.4배, 채소 생산량은 무려 4.8배나 늘었다. 이 것은 놀라운 변화다.
1961년과 2004년을 비교할 때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력만 감소한 것이 아니라 농지면적도 크게 줄었다는 사실(농지가 다른 용도로 쓰였기 때문에)까지 생각하면 1961년과 2004년 사이에 농산물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어야 했을 텐데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산성이 더 높은 농사기술을 농가가 활용할 수 있었던 것에 이유가 있다.
예컨대 자운영이나 산에서 베어 모은 풀로 만든 퇴비 대신에 쓰기 편하고 효과가 큰 화학비료를 모든 농가가 쓸 수 있게 된 것, 농사를 손으로 짓는 대신에 기계로 지을 수 있게 된 것, 잡초나 병해충의 피해를 줄이는 데 노동력을 덜 쓸 수 있게 하는 농약을 쓸 수 있게 된 것, 여기에 더하여 병이나 해충의 피해를 덜 받으며 수량성이 높은 개량된 농작물의 품종을 농가들이 쓸 수 있게 된 것, 더 효과적인 작물재배기술들을 농가가 쓸 수 있게 된 것 등이 이 기적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농촌에서 자운영을 흔히 볼 수 없게 된 것은 농가가 자운영 기르는 법을 잊었기 때문도 아니고 자운영 꽃이 곱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도 아니고 또 자운영 뿌리에 공중질소를 고정하는 유익한 뿌리혹박테리아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도 아니다.
줄어든 농업 노동력과 줄어든 농지를 가지고도 우리 국민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을 더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운영 같은 것이 효과적인 대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농가가 농토에 자운영을 심을 수 없었을 뿐이다.
논 300평에 자운영을 가꿔서 얻을 수 있는 질소의 양은 약 9㎏ 정도다. 이 양의 질소는 요소 20㎏에 들어있는 질소의 양과 거의 맞먹는다. 요소 20㎏의 값은 5천원 정도다. 300평의 논에 자운영을 가꾸는 편보다 요소 20㎏을 사서 쓰는 편이 훨씬 손쉬울 것이다. 그래서 자운영을 심는 농가가 드물게 된 것이다.
/홍 종 운 토양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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