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민은행(國民銀行)과 합병돼 없어진 한국주택은행의 장기발전 전략연구를 맡아 고민을 하던 지난 91년께로 기억된다. 금융기관의 장기발전 전략수립 연구를 위해 그 때 제일 먼저 던진 자문(自問)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우리나라의 금융이 과연 산업인가. 둘째 만약 산업이라면 세계금융 산업의 주도세력은 어디의 누구인가. 셋째 금융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금융경제(money economy)는 실물경제(real economy)를 지원하는 지원섹터로서 이들 둘은 경제를 이끄는 마차의 두 바퀴 역할을 해 낸다는 면에서 금융을 이해할 때, 당시의 그 많은 은행들은 간판만 다를 뿐 하는 일은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 산업이라고 부를 때에도 나에겐 산업으로 인식 되어오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나의 상황 인식은 연구의 초점을 국내금융보다는 국제금융쪽에 더 많은 신경과 관심을 두게 했다. 국제적 흐름의 거시적 관점에서 국내 금융기관의 장래를 구상하는 것이 우선 오류의 가능성을 크게 줄이는 접근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금융의 주도세력이 과연 누구일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흔히 금융의 주도세력은 앵글로 아메리칸(Anglo-American)과 유태인(Jews)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이내들에 대해 자료와 정보를 모으고 분석에 들어갔다. Pax Americana 시대에 앵글로 아메리칸들이 세계금융을 주도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는 측면이며 또 미국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력의 배후엔 유태인이 항상 버티고 있다는 정도의 상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분석과정에서 떠오른 스위스의 존재는 정말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 조그마한 나라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돈 장사를 기가 막히게 잘 하다니 그 비결은 과연 뭘까. 여기에 초점이 맞춰지자 난 유럽의 여러 강소국(强小國)들을 여러 측면에서 대강 살펴 보기로 했다.
그러자 스위스가 지니는 특색의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스위스의 자가(自家) 보유율이 유럽의 여타 국가들보다 현격히 낮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유럽의 대부분 국가의 자가 보유율은 60% 수준이었는데 비해 스위스의 경우는 그 절반인 30%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스위스에서는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반면에 자기 집을 보유할 때는 기회소득세(opportunity income tax)라는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가 보유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사회적으로 남는 돈은 자연스레 스위스 금융기관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한편 스위스의 금융기관들은 이렇게 들어온 돈과 또 후진국의 불법자금 등을 ‘절대(絶對) 비밀보장(秘密保障)’ 이라는 고도의 금융 소프트웨어(software)를 무장으로 돈 장사를 국가의 전략산업의 하나로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스위스 금융의 전략산업화는 근세 유럽의 정치적 격동기 때마다 주변국들의 정치적 패전세력의 재산을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이라는 소프트웨어로 끌어들여와 돈을 늘려오면서 터득해온 돈 장사기술을 오늘의 상황에 기가 막히게 접목시킨 것으로 이해되었다.
지금 우리의 주변 강대국들이 대 격랑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데 우리의 생존논리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며 그걸 누가 마련해야하는 걸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도대체 무엇들을 하고 있는가. 등을 생각하면 대단히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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