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쌀개방과 우리농촌의 살 길

쌀 문제로 또 시끄럽다. 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를 둘러싸고 정부와 여야, 그리고 농민단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연말 시한을 앞두고 국회에서는 비준안 상정을 놓고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농민들은 애써 수확한 벼에 불을 지르는 등 진통을 계속하고 있다. 쌀 협상 비준안을 어느 때 처리해야 가장 적절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쌀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중요성과 또 개방의 필요성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자리하고 있다.

쌀은 누가 뭐래도 여전히 우리 농업의 기둥이요, 대들보이자 주식(主食)이다. 농가 인구가 2002년 현재 359만명으로 10년전보다 211만명이나 줄었다고 하지만 쌀은 아직도 우리나라 전체 농가소득의 절반, 소비자 섭취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그래서 우리 농촌을 지키고 저가의 외국쌀이 밀려오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도 쌀에 대한 ‘대책’은 중요하다.

그러나 수출이 주도하는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쌀 수입 개방압력을 언제까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무역상호주의 측면에서도 보복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농촌과 농업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이제는 쌀에만 의존하는 농업은 생각할 수 없다. 쌀 이외의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원, 즉 ‘포스트 쌀(Post Rice)’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농촌을 감상적 시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독특한 아이디어와 지역의 고유 브랜드로 승부하는 친환경·고부가가치 농업은 희망의 새싹이 될 수 있다. 농촌에도 블루오션 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 농업과 2차산업을 결합한 전통식품업이나 농업과 3차산업이 접목된 농가체험관광 등도 유망한 품목이 될 수 있다. 농민이 살고, 농촌이 살맛나는 고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농업이냐, 비농업이냐를 따질 이유가 없다.

경기도 이천에는 이름도 아름다운 부래미(富來美) 마을이 있다. 한 달이면 1천여명의 도시민들이 찾아오는 부래미 마을은 계절별로 다양한 농촌체험 상품을 마련, 새로운 소득원을 발굴하고 있다. 봄나물 캐기 물고기 잡기 배·포도 따기 황토염색 등 다양한 농촌체험을 관광과 접목시켜 올 상반기에만 1억3천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부래미 마을만이 아니다. 잣으로 유명한 가평은 지난 2000년 33농가가 출자해 축령산잣영농조합을 설립하여 연간 10억원의 매출을 거뜬히 올리고 있다. 개별 생산·판매하던 것을 공동방식으로 바꾸면서 수익이 훨씬 좋아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화성에 있는 현명농장은 2만여평의 배밭을 가꾸면서 매년 봄가을 소비자들을 초대하여 음악회와 배꽃축제를 개최하는 등 고객지향의 마케팅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안성마춤’이란 브랜드를 통해 쌀 배 포도 인삼 한우 등 5가지 특산물을 명품화시킨 안성시는 지난해 365억원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올해는 560억원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듯 경기도에는 아이디어와 신상품 개발, 그리고 브랜드 마케팅 등을 통해 살맛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농촌마을이 적지 않다. 생각을 바꾸고 품질을 업그레이드하고 소비자와 함께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떠한 개방파고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실증적 사례다.

10월의 황금들녘을 바라보며 1970년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사이먼 쿠즈네츠 교수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는 있지만 농업과 농촌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문 병 대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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