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과학, 반복가능성, 객관성, 열린사회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줄기세포를 둘러싼 논란이 국내외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종국에는 황우석 교수가 서울대학교의 자체조사를 받겠다고 했다. 그동안 ‘재검증을 해야 한다’ ‘사이언스라는 학술지의 권위를 믿어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사이언스지도 ‘권위 있는 제3의 기관에 의한 검증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표현으로 재검증을 요구했다. 필자도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언제 이런 기회를 잡는다고 이렇게 흔들어대나’하고 문제를 제기한 측을 마음속에서 탓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자기들보다 앞서가는 우리나라의 기술개발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모종의 공작을 펴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배웠던 것들에 비추어 숙고한 결과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학을 지지해주는 두 개의 기둥은 반복가능성(反復可能性)과 객관성(客觀性)이다. 먼저 반복가능성은 누구든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한다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실험을 할 때 마다 상이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 이론은 법칙(law)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객관성은 타인들(客)이 보아도(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만 수긍이 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과학은 닫힌 독재사회에서보다 열린 민주화된 사회에서 발전할 가능성이 더 높다. 닫힌 사회에서는 권위 있는 학자가 제시한 이론을 재검증해 볼 엄두도 내기 어렵고, 실험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그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그 학자 뒤에 정부나 기타 강력한 세속적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면 회의(懷疑)의 가능성은 그만큼 더 낮아진다. 반면에 열린사회에서는 아무리 권위 있는 학자가 제시한 이론이라고 할지라도 그것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재검증을 요구하거나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이론 주창자는 자기 이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런 도전에 응해야만 한다. 응수를 회피하면 그의 이론은 그만큼 신뢰성을 상실하게 된다.

칼 포퍼(Karl Popper)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에서 ‘객관성은 끊임없는 열린 토론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연구자가 자기의 이론을 법칙으로 만들기 위한 욕심으로 방법론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대 과학이 이용하는 정교한 방법론이 객관성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은 연구방법과 연구결과를 공개하고, 이에 대해 제기된 타인들의 반론을 재반박하는 것이다. 만일 연구자가 이런 반론에 대해 응수하지 않고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권위를 내세워 대강 넘어가려 한다거나 이런저런 힘을 사용하여 반론을 억압한다면 그의 이론은 이미 과학적 법칙이 아니라 믿느냐 마느냐 선택의 대상인 종교나 신화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황우석 교수가 서울대학교의 자체조사를 받겠다고 선언한 것은 잘된 일이다. 그 자체조사가 연구과정에 대한 부분적인 조사가 아니라 연구전체에 대한 철저한 재검증이 되기를 바란다. 현재까지 전개된 상황을 보면 재검증을 거치지 않고는 줄기세포 관련 연구결과가 수용되기 힘들다. 만에 하나 재검증 결과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사운(社運)을 걸면서까지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MBC의 취재정신은 확인했으므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편 재검증을 거쳐 동일한 결론을 얻는다면 앞으로는 그 결과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연구결과의 신뢰도는 더욱 더 높아질 것이다. 이번 일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 태 수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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