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스크린쿼터와 국익

봄이 왔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만물들이 기지개를 켜며 새로운 생기로 거듭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보노라면 답답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는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한 반문화적인 쿠테타이며, 스크린쿼터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가운데 미국의 거대 산업자본과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재앙”이라고 주장한다.

현행 146일의 연간 의무상영일수(스크린쿼터)를 정부 방침대로 73일로 줄인다면 “미국산 황소개구리가 한국내 모든 연못을 싹쓸이해 토종개구리를 멸종시킬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스크린쿼터가 줄게 되면 거대 자본을 앞세운 할리우드의 직배사들이 무차별 마케팅으로 공략해와 한국영화는 경쟁력을 잃게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이 지난 2001년 이후 5년간 평균 54%에 이르고 있는데도 영화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의 발전과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또한 영화 ‘왕의 남자’가 1천만 관객을 넘어 사상 최고의 흥행에 성공한 마당이어서 영화계의 반발이 아이로니컬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정부와 재계는 “예술계는 물론 쌀 시장까지 외국과 처절하게 경쟁하는 마당에 유독 영화산업만 수십 년 동안 보호해 달라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전국민은 4천800만명인데 영화인은 1만~2만명에 불과하고 수출은 2천800억달러인데 영화수입은 1억달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부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될 경우 그 경제적 효과로 양국간 교역규모가 40억달러 증가하고 국내 제조업의 고용인원이 약 4만명 늘어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내놓았다.

경제인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미 FTA와 관련된 스크린쿼터에 대해서는 좀 더 냉철하고 폭넓은 사고가 필요할 것 같다.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가 세계경제 흐름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FTA를 체결하지 않고서는 해외시장에서 낙오될 수 있다. 현재 멕시코와 FTA를 맺지않은 우리나라는 FTA를 맺은 일본 등 세계 30여국에 비해 평균 15%에 달하는 높은 관세를 납부하고 있다. 15%의 관세를 부담하며 우리 제품이 멕시코 시장에서 일본 등의 제품과 경쟁할 수는 없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FTA를 늘려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를 외면한다면 국제적인 고립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70%에 육박하는 통상국가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FTA는 더욱 절실하다. 그래서 국가의 주요 통상과제로 추진되고 있으며, 정부는 칠레와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에 이어 미국과의 FTA 체결을 위한 협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중국 다음으로 교역규모가 큰 국가로서 한미간 FTA가 체결되면 대미(對美) 수출증대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해외기업의 투자도 최대 70% 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 외교, 안보 등을 포함한 한·미동맹 강화라는 부수적 효과까지 얻는 ‘덤’이 크다.

이런 미국이 끊임없이 요구해 온 것이 스크린쿼터다. 어차피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다. 국가간에 주고받기식의 거래가 불가피하다. 이런때 일수록 자기자신만의 이익을 고집하지 말고 국익을 우선하는 성숙하고 냉철한 자세가 아쉽다.

/문 병 대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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