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벤처다

문 병 대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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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매우 불안하다. 체감경기는 싸늘히 식었고 지표경기마저도 호전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연초부터 시작된 고유가는 배럴당 70달러에 육박,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에게 가계와 산업 전반에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환율하락 추세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 적자수출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은 중소무역업체가 올들어 2천개가 넘었다니 할말을 잃을 지경이다.

소비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기업들의 설비 투자 또한 얼음장처럼 위축돼 있다. 이를 반영하듯 얼마전 발표된 4월중 경상수지는 9년만에 사상 최대의 적자폭을 기록하며 올해 전체로도 흑자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호의적이지 않다. 이달초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한국의 경쟁력을 지난해 29위에서 올해는 9계단이나 밀린 38위로 발표했다.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19위)과 인도(29위)는 고사하고 말레이시아(23위), 태국(32위) 보다도 뒤처졌다. 경쟁국은 뜀박질하는데 우리만 갈지자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만나는 기업인들마다 “도대체 사업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사기와 의욕이 일지 않으니 신명이 날수 없음 또한 당연하다.

필자는 30년 넘게 기업현장에 몸담아 오면서 기업인들이야말로 운동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주변에서 사기를 북돋워주고 열렬한 응원을 받을 때 가장 신명나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갈수록 성장동력이 꺼져가고 잠재성장률마저 달성하기 버거운 한국경제를 다시 일으킬 모멘텀은 무엇인가.

현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벤처정신의 부활과 벤처기업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초유의 IMF 외환위기를 맞아 국가경제가 수렁에 빠졌을 때 회생의 가장 큰 동력은 바로 활화산처럼 일어난 벤처붐이었다. 오로지 기술력과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 탄생하며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고용과 소비, 투자라는 선순환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후 과열 벤처붐은 버블 붕괴로 이어지고 후유증 또한 지나쳐 지금은 벤처업계 전체가 붕괴된 느낌이다. 더 나아가 요즘에는 벤처정신마저 실종되고 누군가 벤처기업가라고 하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벤처 빙하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벤처를 도외시하고서는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오늘날 선진국의 잘 발달된 산업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거듭한 끝에 일군 벤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자동차산업, 이탈리아의 패션산업, 일본의 부품산업, 대만의 PC산업, 그리고 독일의 기계산업 등이 그렇게 탄생된 것이다.

특히 벤처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80년 전후 PC붐 시기, 90년대 초반까지의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붐 시기 그리고 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붐 시기라는 세 번의 기술 붐을 겪으며 벤처기업들이 발전과 몰락을 거듭해 왔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세차례의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벤처 생태계라는 큰 그림을 토대로 벤처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제 10여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벤처가 한 두차례의 실패로 인해 업계 전체가 매도돼서는 안 된다. 물론 투자유치에만 급급하고 수익원을 창출하지 못한 벤처 당사자들, 머니게임에 빠졌던 벤처캐피털업계 그리고 막무가내식 지원에 치중한 정부당국 등 관계자 모두의 뼈아픈 자성이 먼저 필요하다. 이러한 바탕 위에 벤처 활성화를 위한 새롭고 혁신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미운 오리 신세인 벤처이지만 언젠가 백조가 되어 화려하게 비상하게 해야 한다.

/문 병 대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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