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경제학

임 덕 호 한양대학교 경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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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재벌회장네 가족은 달동네에서 한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김씨네 가족보다 더 행복할까. 경제대국 일본 국민들은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 국민들보다 더 행복할까.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여러 조사에 나타나 있다. 수천억의 재산을 깔고 앉아 세상만사 온갖 고뇌에 빠져 있는 부자보다 가진 것 없지만 단돈 몇 푼의 수입에도 감사할 줄 아는 빈자가 훨씬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 잣대로는 가장 불행할 것 같은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고 반대로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일본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행복은 재산 순서가 아니라는 데 공감한다.

경제학에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소비자가 어떤 재화를 추가로 소비할 때 추가로 얻는 만족감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주를 마실 때 첫잔보다는 두 번째 잔이, 두 번째 잔보다는 세 번째 잔이 덜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소주에 대한 한계효용이 체감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중에 10만원밖에 없을 때 추가로 얻는 1만원의 소중함보다 100만원을 갖고 있을 때 추가로 얻는 1만원의 소중함이 더 작게 느껴지는 것도 돈에 대한 한계효용체감의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중궁궐에서 호의호식하던 인조대왕이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 피신하였을 때의 일이다. 임금이 생선을 몹시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신하가 천신만고 끝에 ‘묵’이라는 말라빠진 생선을 구해왔다. 평소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인조대왕은 ‘묵’이라는 생선이 너무도 맛이 좋아 임금을 기쁘게 한 생선이라 하여 ‘충미어’라는 이름을 내렸다. 궁궐로 돌아온 후 그 맛을 잊지 못해 충미어를 다시 찾은 임금은 “이처럼 맛없는 고기를 충미어라고 부르기 아까우니 다시 묵이라고 불러라”고 명하여 오늘날 ‘도루묵’이 되었다고 한다. 인조대왕을 감동시켰던 ‘충미어’가 다시 ‘도루묵’으로 된 것은 임금의 입맛이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환궁 전후의 임금의 생활상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오늘도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달동네의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수성찬 앞에서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억만장자들도 많다. 신은 본시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했다는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행복은 인간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때 증가하고 반대로 바라는 욕구가 클수록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남보다 재물을 많이 모으거나, 높은 명예와 권세를 얻거나, 혹은 자식이 출세하면 “이제, 원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그러나 재물욕심, 출세욕심, 자식욕심 다 채워 여한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더 큰 욕심에 사로잡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일찍이 이러한 본성을 꿰뚫어 본 성인들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는 데만 매달리지 말고 먼저 허황된 욕심부터 버릴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이 말씀이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우상 숭배를 경고하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석가는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씀을, 그리고 공자는 “청빈낙도”의 말씀을 통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욕망의 절제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지혜를 겸비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재물은 행복의 필요조건이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말이 새삼 크게 와 닿는다.

/임 덕 호 한양대학교 경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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