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주도의 문화예술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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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 인간의 가장 높은 단계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치가 돼 있어 문화예술 발전은 바로 국가 선진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기도 하다. 중세기에 고전음악의 감상은 귀족들만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살롱에 모여 여유롭게 음악의 감미로운 선율에 도취되어 만끽했던 그 윤택함을 산업혁명 시대를 거쳐 일반 대중들도 갈구하게 되면서 예술은 보편적 가치가 된 것이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예술의 향기는 일단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한 다음에야 찾게 되는 정신적 청량제이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는 주민의 삶의 질에 문화복지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민의 문화복지를 구현하는데 예술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삶의 질을 높이는데 촉매가 되는 문화예술이 경제적 자생력의 한계로 공공재원을 쓰다 보니 언제나 관주도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이러한 관행에서 문화예술의 창의성과 전문성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규모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이 건립되고, 그에 따른 전문인력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문화예술의 창의적 역량의 중요성도 대두됐다. 그동안 관 주도로 운영돼 왔던 문예진흥원이 민간중심의 문화예술위원회로 탈바꿈한 것은 바로 이를 상징한다. 이에 따라 지역 단위의 문화예술위원회가 민간전문가 체제로 출범하게 되면 명실상부하게 문화예술계의 선진화가 한걸음 당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문화예술의 민간주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모든 부문에서 합리성 객관성 전문성이 담보돼야 한다.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위상을 견지하면서도 체계적이고 공명정대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것이다. 문화선진국이 민간 분야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독자성을 인정할 때는 이미 그 사회가 전반적으로 신뢰와 협력의 바탕을 갖추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지금 발 빠르게 문화예술계가 민간주도체제로 변환하고 있는 가운데 효과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민간 분야의 경쟁력 향상도 절실히 요구된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여건에서는 중앙과 지역, 지역과 지역 간의 문화 편차가 심해 민간 전문성의 깊이와 넓이가 많이 다를 수 있다. 권역 간, 영역 간에 문화적 자원과 재원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아 전문인력의 ‘체험적 지식’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경우 일찌감치 내실 있는 지방자치제도를 통해 지역의 균형 있는 문화예술 성장기반을 닦았다. 이는 바로 일본의 문화예술계가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정착돼 있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한 예로, 일본에는 전국에 1천300곳 정도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 지난 2003년 정부가 지방자치법을 개정, ‘지정관리자제도’를 도입했다. 그래서 공공 문화예술시설의 관리 운영을 외부 민간 전문가나 기관에 위탁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민간위탁의 경우 공개모집과 함께 임의 운영자 지정의 비율도 높아 객관적 정책신뢰도가 높다. 이같은 실질적인 제도를 통해 민간주도로 문화예술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불고 있는 민간전문화 바람이 단순히 문화예술정책 실행을 위한 사업 이전이나 막연한 ‘수직적 탈 관료’의 변화가 아닌 문화예술의 정책을 관장하는 공직사회와 창의적 자율성을 갖춘 민간전문가 사회가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조율하는 대등한 상생의 파트너십 관계로 정립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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