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협상이 이제 막판을 치닫고 있다. 미국식 표준(Standard)에 서툴거나 준비가 부족한 업종의 반대도 거세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농업인들의 반대는 매우 격렬하다. 어떤 이들은 농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우리가 이번에 한미 FTA를 체결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인 미국시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지난번 UR협상이 타결되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할 때, 또 칠레와의 FTA 협정 체결 때에도, 이제는 죽게 되었으니 살려야 한다고 수십조 원에 이르는 국가재정을 투입했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농업은 아직 죽지 않았고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약간의 재정만 좀 더 투입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식량을 해외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잘사는 국가들이 많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엄청난 규모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 인접해있기 때문에, 길게 보면 농산물의 해외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농업인구도 줄고 있으므로, 농업인들의 아우성도 조금만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잦아들 것으로 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농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음악을 소리로만 듣는 사람들이 음악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농업은 우리에게 농산물을 생산·공급하는 산업적 가치 말고도 문화적, 교육적 그리고 정서적 가치 등을 함께 가지고 있다.
농업인은 여타의 산업인들과는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농업은 해님과 달님과 비와 바람과 땅, 여기에 농민들의 땀이 배어서 결실을 얻기 때문에, 농업인은 주변의 모든 것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데 더 익숙한 사람들이다. 경쟁이라는 것도 사실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일 뿐, 자연 속에는 없는 것이다. 사슴 무리 중에서 힘없는 사슴이 사자의 밥이 된다고 볼 수 있지만, 반대로 그 한 마리의 희생을 통해서 다른 무리들이 무사해졌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1등만 살아남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는 1등보다 더 많은 2등과 그 아래의 보통사람들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 더구나 경쟁의 중심에는 항상 ‘나’가 있어야 하는데, 실은 ‘나’라는 것은 항상 ‘너’라는 것을 전제했을 때만 성립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너’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없는 것이요, ‘너’는 패자요 ‘나’는 승자라는 생각에 갇힌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나’는 ‘너’를 위해서 ‘너’는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농업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농업인들은 쌀값이 떨어져도 논바닥이 갈라지면 양수기로 물을 품어 올리고, 고기 값이 떨어져도 가축을 굶기는 일은 더욱 없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명은 ‘돈’과 비교할 수 없다는 생명의 존엄성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까이 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까운 곳에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어지러움은 절차와 규칙을 무시하고 어긴 사람들이 많아지는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농업에서 멀어질수록 이를 강제해야하는 경찰력은 그만큼 더 강력해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고, 농촌에서는 자식을 초등학교에 조차도 보낼 수 없도록 우리가 내버려둔다면, 빵 문제는 산유국들처럼 수입해서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경쟁 제일주의에 의한 패배감 팽배, 생명 경시, 무질서 등의 후진국 병은 어떻게 고쳐서 건강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 영 석 한국농업전문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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