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Rene Descartes:1596∼1650)는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프랑스인들의 사고의 틀은 데카르트의 이성적 논리, 즉 ‘카르테지앙’에 의해 모든 이론이 형성되고 펼쳐지며, 상대를 설득하는 중요한 방식이 된다. 20세기 미술사에서 중요한 막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은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은 일상품이 아닌 예술품으로 탈바꿈됐다. 그는 작품을 예술가들의 손으로 만든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상용품을 차용하더라도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사고(思考)를 창출할 수 있는 컨셉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 예술가들의 정신을 크게 변화시켰고 예술품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허물었다. 즉 현대 예술의 개념과 영역을 확장시킨 셈이다. 이처럼 뒤샹이 20세기 미술사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까르테지앙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프랑스 미술교육의 저력을 보여주는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국립고등미술학교 이하 보자르) 또한 철저히 데카르트의 논리에 의해 엘리트 미술교육을 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미술이론을 정확히 끌어내 논리적으로 순서에 따라 작업하는 방법을 중요시하고 작품을 설명할 때 감정에 기대지 말고 대중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도록 가르친다. 프랑스 미술교육은 문교부와 문화부 두 축으로 이뤄진다. 미술대학은 문교부 산하로 예술사를 전공할 학생들에게 적합하다. 반면, 보자르는 진정한 의미의 문화생산자, 프로 예술가 양성교육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 문화부 소속으로 오늘날 프랑스 예술을 지탱해온 저력 있는 미술교육 시스템으로 소수 엘리트 교육도 자랑한다. 앙리 마티스와 조르주 루오 같은 세계미술사의 수많은 거장들이 보자르 출신이었고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보자르 시험에서 3번 떨어졌을만큼 입학이 쉽지 않다.
프랑스 보자르 교육의 핵심은 두 축으로 볼 수 있다. 첫째, 미술이론과 실기가 동시에 완전히 융합된 작업세계의 뼈대를 세우는 일이다. 보통 이 시기에 자신이 평생동안 하게 되는 작업의 기본방향이 결정되고 20년 이상 한 방향으로 끈기 있게 밀고 나간다. 둘째, 대중에게 자신의 작업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는 혹독한 훈련이 반복된다. 현대미술은 특히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므로 관객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수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작업의 이론적 배경이나 철학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초청 교수로 있는 핸느시 보자르는 파리 서남쪽 브르타뉴 지방에 있는데 프랑스 전체 보자르 52곳 중 세 번째로 규모가 큰 곳이다. 4월 중순 브르타뉴 지역 보자르 4곳은 신입생 공동 입학시험이 있는데 전세계 국적을 가진 1천여명의 지원자들이 몰린다. 핸느 보자르는 신입생을 80명 선발하는데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1지망으로 선택하기 때문에 입학 경쟁률은 12대 1 정도 된다. 보자르에 떨어진 많은 학생들은 미술대학을 선택하지만 미술대학이라고 입학과 졸업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매년 4월 입시철 필자가 동료 교수들에게 반복해 듣는 말이 있다. “한국 학생들은 왜 똑같은 테크닉과 획일적인 생각으로 중무장됐는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한국 미술교육의 현주소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란 직업은 과거의 사람이 미래의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무한 경쟁의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미술대학생이 치열하게 대중과의 소통을 교육받은 보자르 학생과 비교해 경쟁력이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문제아의 배경에는 문제 부모가 있듯 한국 미술대학생들의 문제점은 교수들의 낡은 교습법과 커리큘럼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교수는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만큼 현실적인 커리큘럼과 비전 있는 교습법이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한다.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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