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발력과 졸속, 종이 한 장 차이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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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장예모 감독이 보여준 개막식은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그것이 보여준 물량주의나 획일성의 미학, 과시욕 같은 것에 대한 지적은 마땅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근본적 결함을 인정한다 해도 그들의 컨셉트를 비교적 명료하고도 완벽하게 관객에게 전달한 것은 분명 성과로 인정받아야 한다. 공연을 연구하고 평론하는 사람으로서 작품에 대해 더 하고 싶은 말이 왜 없겠는가마는, 나는 딱 한 가지가 부러웠다. 그것은 이번 개막식 공연이 꽤 오랫동안 준비되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작품이 꽤 오랫동안 기획되고 준비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경기장 바닥을 파서 승강기를 설치하려면 공사 기간만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여러 첨단 장치를 제작하는 것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수만 명에 달하는 출연자를 동원하여 연습을 한 기간도, 최소한 8개월에서 10개월은 걸렸을 듯 싶으니, 구성 등 발상단계에서부터 치자면 몇 년의 긴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긴 준비기간을 부러워하는 것은, 분명 나 같은 ‘업계’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행사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빠르고 급하게 사람을 몰아치는 지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주변에서 내로라 하는 국제행사를 치루면서 개막식이나 폐막식 같은 중요한 문화행사에 쓸 작곡을 불과 4~5개월 안에 해내라고 청탁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작곡가가 손을 놓고 그 일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니, 사실 4~5개월의 시간은 스케줄을 조정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갑작스러운 작곡 청탁에 잡혀있던 스케줄들을 무리하게 펑크 내고 없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무리하게 작곡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 결과는 뻔하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작곡의 독창성이나 정교함이 떨어지거나, 연주가 연습 부족으로 엉성해지거나, 둘 다이거나, 어쨌든 질의 저하는 뻔한 일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질은 생각지 않고 일단 펑크 내지 않고 치러내는 것이 당면한 과제가 되어 버린다.

이런 일이 왜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가. 대개 공무원들은 당해 연도의 일로 간주하고, 예산과 집행까지 모두 당해 연도에 해결할 것으로 본다. 연초에 계획 세우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작곡자나 음악감독을 선정하면 몇 달은 후딱 지나가 버린다. 이제 행사는 코앞으로 다가왔고, 엉겁결에 맡은 사람은 질을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시간에 맞추어 내기에 바쁜 것이다.

나는 뮌헨올림픽 기념 작품으로 독일에 있던 윤이상이 오페라 ‘심청’을 만들 때에 무려 3년의 시간을 투여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공무원에겐가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공무원의 말이 걸작이었다. 6개월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왜 3년씩 주어서 시키냐는 것이다. 이들 공무원에게 속전속결이야말로 최고의 덕목이었고, 그 안에서 작품의 질에 대한 고려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남북한이 단독정부를 수립한 지 60년 동안, 우리는 모두 놀랄 만한 압축성장을 보였다는 자랑을 한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질의 문제인 문화를 누락시킨 측면이 있다는 지적을 아니할 수 없다. 문화는 양의 문제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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