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으로부터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썼다는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 동영상도 보았을 테고 번역된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까 새삼 책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시한부 삶을 남겨놓고 무슨 생각을 했는가가 궁금해서 읽어 보던 중, “무엇이 날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만들까?”라는 저자 스스로에게 묻는 마지막 질문이 교단에 있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대학교수라는 직업은 해가 바뀔 때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생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번 학기에도 어김없이 그런 새내기 대학생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많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는가가 늘 두려운 일이었는데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에서의 질문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현대사회는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개인과 개인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촘촘히 연결돼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폐쇄된 전통사회보다 강한 상호의존성을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쉽게 잃어버리고 주위의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기만 하면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잘못된 교육제도로 인해 대학에 들어오기까지 자신이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돌아 볼 틈조차 가져 보지 못한 모든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랜디 포시가 던진 “무엇이 우리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규정하게 하는지”라는 질문을 음미하게 하고 싶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존재는 남을 흉내만 내는 ‘나’는 아니어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나’여서도 안 된다. 서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사회에서 ‘나’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더불어 행복할 수 있을 때에 가치를 지닌다. 대학생이라는 위치가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자리이고 어느 기준으로 보아도 선택받은 자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나’를 찾아내는 일이 대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를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가 모든 개체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네트워크 사회이다. 네트워크 사회를 마뉴엘 카스텔의 정의에 따라 중요한 사회 구조와 활동이 전자화된 정보의 네트워크로 조직화된 사회라고 보았을 때, 정보화 사회의 만물의 근원은 ‘관계’, 곧 ‘나’와 ‘나’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가 그 근원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정보는 관계와 관계의 집합인 네트워크를 통해 생산될 수 있지만 고립된 정보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이 전자화된 정보의 운반체 혹은 소유자 이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질문을 현재의 대학생들에게 던져보고 싶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에 대한 답변은 다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네트워크 사회’로 돌아온다. 모든 이와 연결돼 있음을 혹은 연결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내 자신이 단순히 네트워크의 일부가 아닌 유일무이한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다면 가장 단순한 금언(金言)을 따르면 되리라. “남이 나에게 행하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하여라.” 내가 정보사회의 조각이 되고 싶지 않다면, 다른 이의 유일무이함과 인간됨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 한다면,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남을 해하고 어렵게 만드는 일은 적어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볼 때 대학생들에게 남을 통해 ‘나’를 찾아보라 권고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조심스럽다. 사회 일각에서 소위 출세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매우 투쟁적이고, 약자를 밟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부류가 대부분이어서,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집중되어 있는 시장과 정치가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늘 시끄러운 투쟁의 장이 되고 있다. 그곳에서 우두머리를 꿰차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시한부 삶만 허용돼 있다고 할 때 자신의 삶이 행복했다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나는 우리의 학생들이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나’를 만들어나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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