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와 소통의 정치

정보화와 민주화는 서로 관계가 있다. 정보화가 진척될수록 소통이 원활해지고, 소통이 잘 될수록 대중의 힘이 강해지고, 대중의 힘이 강해질수록 민주화는 발전된다. 실제로 우리도 이런 정보화에 따른 민주화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난 1987년 서울시청 앞에 100만 군중을 모았던 이른바 6·10 항쟁이 한집에 한 대씩의 전화를 보급한 1가구 1전화기 정책에 힘입었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밑바탕 또한 1가구 1PC 정책이 만들어 낸 인터넷(네티즌)의 힘이 컸음을 부인할 사람이 많지 않다.

30년 전,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정보혁명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미래학자들이 발표하는 이러한 의견은 단순히 자신의 업적만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적 변화가 올 것이니, 새로운 환경에 맞춘 새로운 대응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미 정보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지식정보사회에 돌입했고, 싫건 좋건 우리는 이 정보화의 큰 물결에 떠밀려서 변화해 가고 있는 중이다. 기업도, 경제도, 개인의 생활도, 사회도 변하고 있다. 하지만 단 한 부문 정치만은 요지부동이다. 전혀 변하지 않았고, 아예 변하려는 생각조차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따져 보면 정보화 된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변화는 위정자들에게 요구된다. 국민의 힘이 강력해진 사회의 큰 특징은 권력을 가진 특정인의 소신이나 소수의 의견만으로는 정치도 정부도 꾸려나가기가 어렵게 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을 가볍게 보고 과거의 밀어붙이기로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오기가 쉽다. 높아진 민도가 이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지식정보사회의 정부는 과거 산업사회의 산물인 통치의 정부, 즉 거번먼트(government)가 아니라, 소통의 정부인 거버넌스(governance)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버넌스시대는 한마디로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시대다. 지난날 의사전달수단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표(국회의원)를 뽑아서 맡겨야 했던 대의정치가, 정보지식화가 발전되어가는 오늘의 세상에서는 자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일들, 특히 국민의 삶에 큰 변화를 주는 중요한 정책들은 반드시 공개해서 함께 토론하고 설득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이 필수적인 시대가 됐다. 전자민주주의, 온라인 정치참여, 인터넷 국민투표 등의 용어가 등장하는 것이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다. 지난 해, 나라를 온통 혼란에 빠트렸던 소고기 파동도 너무 서두른 나머지 공감대 구축의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에 빌미가 된 것이었다. 투명해야 한다. 예컨대 4대강 정비 예산의 거듭된 증액이 그렇다. 대운하의 속셈을 감춘듯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 통합하고 화합해야 한다. 분열과 타도만을 외치는 정당과 국회, 타협을 거부하는 정부의 행태는 거버넌스에 역행하는 것들이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명박정부의 정책능력은 크게 탓할 것이 별로 없다. 소고기 파동도 한미FTA의 중요성에 비춰서 작은 것 주고 큰 것 얻자는 협상의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요, 글로벌 금융위기의 대처나 관리 역시 세계에서 가장 우등생으로 평가받고 있는 터 이기도 하다. 문제는 소통이다. 자신의 주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정부가 되어야 하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 똘똘 뭉친 동아리 정치가 아닌 비판세력까지 함께하는 포용의 정치가 돼야 한다. 국민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열린 정부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무조건적인 비판과 극렬한 시위로 빚어지는 사회혼란을 잠재우고 경제살리기, 나아가 더욱 잘 사는 국가만들기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장호 경영학 박사·전 한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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