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마케팅

2천년 전 중국학자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史記)에서 정반합(正反合)의 원리를 내놓았다. 정(正)이 있으면 반(反)이 있고 그것이 어울러져(合) 정(正)이 되어 흐르다가 다시 반(反)이 등장한다는 변증법적 논리다. 그동안 공산주의 국가에서 많이 사용됐었는데 이것이 요즘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쓰여 지고 있다.

원래 공산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통해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였고, 민주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통해서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맞는 사회와 생활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 기본원칙이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사회주의는 따뜻하고 자본주의는 냉혹한 이미지를 준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사회주의 공산국가는 불과 70년 만에 무너졌고,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이래 250년을 독야청청하고 있다. 왜 그럴까? 사회주의는,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냉혹성에 반발하여 칼 막스, 트로츠키 같은 사람들이 책상에서 만들어낸 이상향(理想鄕)이었던 반면, 자본주의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진화, 발전해 온 자연의 산물(産物)이란 점이 그 이유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개인의 능력을 중시해서 구성원에게 노동의 가치와 도전의 동기를 부여한 반면, 사회주의는 평등을 중시해서 누구라도 개인적인 성취를 위해서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던 데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 이념이 자본주의의 변천에 거의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사회주의 공산국가가 세력을 한참 확장하던 1930년대에, 그동안 자유방임했던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수정자본주의로 수술을 받았고, 이번엔 사회주의의 몰락이 계기가 돼서(세계가 경제중심주의로 바뀌면서 등장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시 한번 수술대에 올라와 있다.

2007년 12월24일, 세계 제일의 부자인 빌 게이츠 회장(마이크로소프트)은 다보스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제창했다. 자본주의가 인류의 삶을 향상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지구상 인구의 절반이 그 혜택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면서, 이들을 구제할 책무가 자본주의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제안은 파격적이다. 적극적인 빈민대책을 요구한다. 예컨대 아프리카에 모기장을 파는 기업은 판매수익의 일정부분을 말라리아 퇴치기금에 넣겠다고 미리 천명하고 실천하자는 식이다. 같은 무렵 세계 제2의 부자인 워렌 버핏 회장(버크셔헤서웨이)도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서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인간적이고 인정있는 자본주의를 역설했고, 최근엔 이들 두 사람과 함께 조지 소로스 회장(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오프라 윈프리 (토크 쇼 앵커),마이클 블룸 버그(뉴욕시장), 지드 록펠러 등 미국 최고 거부들이 함께 모여 힘을 합쳐 더 많은 박애주의를 실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비단 재계뿐만이 아니다. 일본(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장관), 프랑스(사르코지 대통령) 등 부자나라 정부들이 줄이어 동조의견을 내 놓고 있다. 자본주의 수술은 이미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스탠퍼드 연설에서 성장의 열매를 사회적 소외계층에 까지 나누는, 즉 사회의 공동선을 중히 여기는 원칙이 선 자본주의(disciplined capitalism)를 제시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조문정국을 거치면서 서민을 위한 정책발굴과 함께 현장방문 등 이른바 서민마케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진즉에 그랬어야 했다. 말로는 중도실용을 표방하면서, 실제론 부자에게 세금을 깎아주고, 부자동네 집값을 풀어 주고, 부자기업의 해묵은 민원을 풀어주고, 시장에서의 고삐를 풀어서 강자만 이기게 하는 이른바 강부자정책은 아무래도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 그동안의 신자유주의가 정(正)이었다면 서민과 소외계층을 챙기는 서민정책은 반(反)이 될 것이며, 이들은 함께(合) 사회안정 속의 경제발전이라는 새로운 정(正)을 만들어 낼 것이다.  /조장호 경영학 박사·전 한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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