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석학인 사무엘 헌팅턴 교수는 21세기를 문화가 중요한 시대로 규정했다. 21세기의 선진국이 되려면 문화 경쟁력에서 앞서야 한다는 것이 헌팅턴 교수 주장의 요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란 사회기강, 규율, 문화 규범, 도덕 수준 등을 뜻한다. 문화는 반복적 학습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생활 속에 뿌리 내린다. 오랜 역사에 걸쳐 화석화한 굴종적 권위주의와 배타적 집단주의를 청산 못한 우리는 사회기강, 규율, 문화규범, 도덕수준 등 어느 항목에서도 선진국 수준의 문화 경쟁력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에서 의식주 하나 제 힘으로 해결 하지 못했던 가난한 빈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고, 민주화의 모범생으로 탄생했음에도 한국은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선진국은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의 질을 향유하는 나라다. 정치적 압제로부터 자유롭고,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개방적 민주 제도가 정착된 나라다. 그리고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주체적 시민의식이 활성화 된 나라다. 우리가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하나, 과연 우리는 인간다운 문화 예술적 교양을 향유하고 있는가. 자유와 인권의 깃발들이 펄럭거리고 있지만, 그 펄럭 거리는 깃발들이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농락하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세력으로 부터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지켜 내기 위한 민주시민의식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가.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돌아보는 우리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삼풍 아파트와 같이 무너져 내린 사회기강, 휴지 조각만도 못하게 대접 받는 규율, 집단적 이기주의와 기득권의 횡포로 황폐화 되고 있는 문화 규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양심과 진실을 손 뒤집듯 무시하는 도덕심의 타락,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오로지 남의 탓이라고 외쳐대는 그악스러움의 위세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인간답게 사는 교양과 염치,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배려와 존중은 설 자리를 잃었단 말인가? 절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열차가 진입하는 위기 상황에서 몸을 던져 지하철로에 떨어진 노인을 구출한 고교생,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는 수 많은 자원봉사의 물결,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을 거리응원의 시민 축제로 승화시킨 위대한 시민정신, 그 수많은 인파가 보여 준 질서와 규율, 수백만 인파가 떠난 자리에 휴지 한 장 남기지 않았던 공중도덕 수준에 전 세계가 앞 다퉈 보내준 찬사, 이 모든 것들 또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몇 가지 사례들로부터 우리는 헌팅턴이 말하는 문화 경쟁력이 우리 자신 속에 잠재 해 있음을 확인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가. 21세기 문화 선진국의 문이 바로 눈 앞에 기다리고 있음에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문화경쟁력을 파괴하는 퇴행정치와 불법 불감증, 증오와 갈등, 공중도덕의 실종과 무질서를 최근에도 우리는 신물나게 목격한다.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국회의원들의 난장판 추태, 때와 장소의 적절성을 불문하고 정쟁에만 집착하는 무정부적 혼미, 사제 총포로 무장하고 공권력을 공격한 불법파업 현장의 아수라장, 피서 철 해안과 계곡에 넘쳐 났던 쓰레기 홍수, 불안과 불평을 여과 없이 확산하는 공익부재 방송, 이 같은 반문화적인 정치사회 병폐를 청산하고 선진화의 길로 접어 들어야한다. 이제 문화경쟁력에 앞서기 위해 사회기강, 규율, 문화규범, 도덕수준을 선진화하는 문화시민운동에 시민들이 앞서 일어나야한다. 대통령은 문화시민운동을 통해 따듯한 자유주의와 성숙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시민의식 개혁에 국가 지도력을 발휘해야한다. /이진배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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