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인 2008년 2월26일 오후, 우리 일행은 개성공단 2단계 구역에 대한 문화재 예비 조사를 위해 개성시 삼봉리에 있었다. 사업 지구의 남서쪽 끝에 해당하는 삼봉 저수지 제방 위에 서니, 며칠 전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인 삼봉리 일대의 넓은 벌판과 덕물산, 진봉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평양에서 온 조사원 중 몇 명은 4년 전 함께 조사를 했었던 우리 일행을 몹시 반가워했다. 원로 고고학자인 리창언 선생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과 함께 다른 조사원들의 근황도 들을 수 있었다.
826만4천여㎡ 규모의 개성공단 2단계 사업 지구는, 1단계 사업 지구의 서쪽에 잇닿아 있는 개성시 봉동리, 삼봉리 일원에 위치하며, 남쪽의 덕물산, 북서쪽의 진봉산, 북동쪽의 흥룬산으로 빙 둘러 에워싸여 있는 분지다. 또한 삼봉천이 사업지구의 남쪽에서 북서쪽으로 중앙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어, 문화유적이 있을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 지형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산과 들판에는 이렇다 할 나무나 건축물도 없고, 풀도 아직 자라기 전이라 지표 조사를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지표 조사는 3월4일부터 시작됐다. 눈은 이미 녹아 있었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현장으로 가려면 봉동 시내를 거쳐 마을을 가로지르게 되는데, 차를 타고 가는 도중 많은 주민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짐을 지고 걸어가는 사람들. 유치원에서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우리를 쳐다보던 아이들. 우물가에 모여서 수다를 떨며 빨래하던 아낙네들. 논밭에 나와 거름을 주고, 끌고 밀며 쟁기질을 하는 농사꾼 부부.
사방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보호(?)해 주는 가운데 북한 조사원들과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 조사를 진행하면서 무언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 왔다.
지표 조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와 고려시대의 고분군,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생활유적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산포지 20여 군데를 확인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는 절터로 추정되는 대규모 건물지의 확인이었다.
전체 규모가 13만7천여㎡에 달하는 이 대형 건물지는 양주 회암사지처럼 아래쪽에서부터 여러 단을 이루며 건물이 조성돼 있었다. 큰 주춧돌이 흩어져 있는 건물지 주변에서 수많은 기와편과 함께 막새기와도 여러 점 수습됐다. 고려 시대 개성 주변에 108개의 큰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었다.
조사를 마치고 한 달 만에 서둘러 지표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곧바로 시굴이나 발굴 조사로 이어져야 하고, 사업 일정에 맞추려면 조사를 빨리 끝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개성공단 2단계 추진 일정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작년 10월, 다른 일 때문에 다시 개성공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개성공단 주변을 돌아보는 도중 공단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수천 명의 북한 노동자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된 것은 또 하나의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차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돌아오면서 간절하게 기원했다. 시골 할아버지처럼 선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리창언 선생이 쾌차하기를, 그리고 우리가 조사해 놓은 그 유적들을 발굴하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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