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 받아야

최근 수원에서 생후 3개월 된 영아가 게임에 중독된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로 아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역신문을 통해 처음 보도가 나간 이후 전국의 언론에서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때마침 지난 2월 프로라이프의사회의 ‘불법낙태’ 병원 고발로 촉발된 낙태논쟁이 한창이던 중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성인의 게임중독과 그것이 개인과 가족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이 사건은 정작 생존을 위해 절대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영아의 생명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이 사건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다.

 

프로라이프의사회를 비롯해 무조건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이다. 언제부터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입장의 차이가 있겠지만, 논란의 여지없이 분명한 건 이미 태어난 아이의 생명권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태어난 이후 방치되다가 최소한의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3개월 만에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그 영아의 생명권은 ‘낙태논쟁’의 핵심에 있는 태아의 생명권만큼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태아의 생명권을 내세우며 불법낙태 근절을 주장하는 사회가 태어난 아이의 생명권에 대해서는 이토록 무심하다는 사실에 기이함마저 느껴진다. 태아의 생명권에 기댄 낙태근절 운동이 공허하다고 느껴지는 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생후 3개월 된 영아를 굶어 죽는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태아의 생명권은 단지 태어날 권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할까. 태어난 이후는 부모가 알아서 해야지, 부모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개인적인’ 일이라는 것인가. 낙태금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어떤 경우이든 무조건 낳자고 하는데 이 사건은 과연 우리 사회가 그렇게 낳아진 아이들을 잘 길러 낼 수 있는 사회인가 고민하게 한다.

 

여성의 임신·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는 주장은 태아의 생명권과 대치되는 주장이 아니다. 현재의 낙태논쟁은 여성과 태아를 분리하고,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권리가 상호배치 되는 것처럼 다룬다. 그런데 태아는 여성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며,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권리가 양자택일의 것도 아니다. 여성은 임신·출산의 주체로 태아의 권리를 포함해 자기 몸에서 발생한 임신의 지속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경우 아이의 일차적인 양육자가 될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낙태를 할 것인가, 출산을 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단지 임신기간이나 출산이라는 특정한 시점의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출산이후 그 아이가 최소한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인가 하는 것까지 고려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여성과 태아의 권리가 배치되는 것처럼 호도되는 것 외에도 현재의 낙태논쟁은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생명권이 보장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한국 사회는 ‘불법낙태’ 병원을 고발하는 것 보다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존중하고, 임신을 지속해 출산을 하기로 결정한 여성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낙태할 권리 뿐만 아니라 낙태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된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지키는 것이면서 동시에 아동의 보살핌받을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형옥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성평등·고용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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