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권 유네스코평화센터 원장
허 권
유네스코평화센터 원장
지난 7월 중순 유네스코가 한국의 서울과 이천을 세계창의도시의 하나로 지정했다는 낭보가 들어왔다. 그동안 별 다른 문화소식이 없는 상황에서 유네스코에서 날아 온 낭보는 문화예술계 종사자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유네스코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전 세계 도시의 문화역량을 강화하고, 문화산업을 도시 차원에서 발전시키기 위해 2004년부터 시작한 문화도시 사업에 베를린, 에딘버러, 가나자와 등에 이어 우리의 도시들이 처음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서울은 디자인 분야로, 이천은 민속문화 및 공예분야로 선정됨으로써 이 도시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창의도시로서 문화적 역량을 한층 더 공고화할 뿐만 아니라, 문화상품의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전 세계 여타 도시들의 문화발전에 기여해야 할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오늘날 문화는 신 성장동력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새로운 고부가가치의 창출과 고용증대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지자체들이 지역의 문화자원을 집중 개발하고 시설을 확충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의 현 모습은 여전히 문화를 행정의 일개 분야로 치부하고 도시의 외관을 장식하는 부속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도시의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반시설 구축과 함께 이를 운영할 고도의 숙련된 문화인력들이 곳곳에서 창의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시설에 대한 투자보다는 인적자원의 양성이 급선무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문화예술의 주요 거점 도시들은 전통문화와 함께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수많은 장인들과 예술가, 기획자들이 최대한 역량을 구가할 수 있는 여건의 조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늘날, 문화의 경제적 유용성, 특히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의 급증과 문화산업의 기대감 고조로 많은 젊은 세대들이 문화콘텐츠 분야로 수용되고 있으며, 시장도 날로 커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부응해 2000년 문화콘텐츠 유관 학과가 67개에 불과했지만 2008년 조사에 의하면 그 숫자가 1천325개로 증가했고 매년 4~5만 명의 졸업생들이 배출되는 양적 급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신 성장동력화, 문화대표도시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그동안 중앙과 지방정부는 지역 문화역량의 강화정책을 수립하면서 문화와 경제, 문화와 발전을 연계시키고자 했으나 문화시장의 유동성과 성장에는 그리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아주 소수의 신규인력만이 지역의 문화산업체에 고용될 뿐이다. 그것도 정규직 채용보다는 인턴, 계약직, 프로젝트 참여 등 단기성 채용으로 이 분야의 고용 불안정이 상대적으로 다른 산업분야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지역의 문화성장을 이끌 인력의 배출은 고등교육기관의 몫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산업체들은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창의적 고급 인력의 양성을 강력히 요구하였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고등교육기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하는 사실은 인력의 양성보다는 학교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일할 자리가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 있는 문화분야의 일자리 여건이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정부의 문화분야 인력정책이 신규 인력을 길러내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지, 실제 안정적 재직 유도에는 무관심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진정 새로운 문화시대를 열 시대정신을 수용하고 지역의 문화성장력을 배양하려면 무엇보다도 문화인력시장의 고용상황을 점검하고 창의성, 전문성을 갖춘 고급인력들이 지역발전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의 개선에 좀 더 노력을 해야 할 단계이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