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조용한 축제는 없다. 민족과 국가, 지역에 따라 인류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축제를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한결같이 시끄럽다. 왁자지껄, 야단법석, 시끌벅적 이렇게 표현하면 적당할까. 좀 더 정도가 심하면 광란의 상태가 된다. 외국의 어떤 축제들은 사람이 다치고 기물이 파손되고 심지어는 죽는 사람도 속출한다. 카오스의 세계다. 한편, 축제 속의 인간들이 세상의 허울과 위선을 벗어 버리고 억눌렸던 에너지를 발산한다면, 일상 속의 인간들은 철저히 질서와 규범 속에서 살아간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 간곡한 어조의 안내문이 붙었다. 누구나 잘 알고 있을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으니 다시 한 번 주의를 당부하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그 중 두 가지가 아파트 생활을 어렵게 느끼게 하고 단독 주택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들이었다. 오전 9시 이전 또는 오후 9시 이후에 소음을 내지 않도록 주의할 것, 실내(계단, 복도/세대 내 화장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 것 등이다. 함께 살기 위해서 꼭 지켜야 할 덕목이지만 쉽지 않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마음 편히 음악을 들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지만 마음 같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른 이웃의 편안한 휴식도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집 베란다뿐만 아니라 화장실에서조차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우기도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니까.
일상서 벗어나 에너지 발산 기회
우리의 일상이란 늘 이렇다.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만은 없다. 우리의 일상은 타인과 함께 어울리며 정상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질서와 합리적 연속성을 지니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서 함께 살기 어렵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가기 싫은 곳에도 가고 먹고 싶지 않은 것도 때로는 함께 먹어야 한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게임의 원칙에 따라 경쟁해야만 한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속도를 요구한다. 한국 사회의 ‘빨리 빨리’는 경쟁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위기의식의 발현이다. 우리의 일상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힘든 일상만 이어진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자기만의 빛깔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발산하려고 하는데 현실의 질서는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일상을 벗어나는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긴장·구속 털어내고 활력 재충전
축제는 이러한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다. 느림의 미학이고 휴식이다. 잠시 가두어 놓았던 생명의 활달함을 꺼내어 확인하는 일이다.
잠시 일상의 무한궤도를 벗어나 긴장과 구속을 털어버리고 자기 본래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해버리는 축제는 다시 일상의 삶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저마다의 목소리로 한껏 떠들며 즐기니 축제는 조용하지 않다.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걸음걸이로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수원을 대표하는 여름철 수원화성국제연극제도 끝났고 지난 일요일에 수원화성문화제도 막을 내렸다. 축제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축제를 치루면서 많은 소음들이 발생했다. 쉬고 싶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도 생기고 그래서 이런저런 불만도 듣게 된다. 불편을 감수해 준 시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그러나 이 소음은 저마다 살아 있다는 활어시장의 싱싱한 생명력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서 다시 일상의 질서로 돌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충전해준다. 축제가 소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의미와 내용은 생산적이다. 소음을 감수하면서 축제를 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해 내년에는 더욱 풍성한 축제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김동언 경희대학교 극장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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