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패러디가 크게 유행했다. 이는 패러디가 인간의 모방 본능과 풍자 본능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패러디는 대개 문학작품이나 TV 드라마, 영화, 광고 등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지만, 정치인의 한 마디 발언, 특히 실언이나 망언도 중요한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한 정치인의 보온병 포탄 발언과 최근의 자연산 발언은 그 대미를 장식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속담이나 격언도 심심찮게 패러디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를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속담이나 격언은 인간성과 인간의 삶에 대한 대중들의 경험에 기반한 진리이고, 그러므로 그것은 정치인의 실언과 달리 풍자의 대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속담들이 패러디가 되었을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은 ‘고생 끝에 골병든다’로,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이다’라고 패러디 됐다. 이들 속담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임을 말하고 있는데, 패러디 속담에서는 이것이 오늘의 현실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본래 속담이 갖고 있는 교훈적 메시지를 비관적 현실에 근거해 풍자하는 것들이 많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로, 혹은 심지어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로 패러디 된다. 속담은 아니지만 최근에 유행하는 슬로건 중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이것도 참 말이 쉽지 실천은 너무나 어려운 얘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가 더 맞는 얘기인 듯 싶다.
속담·격언 패러디로 현실풍자
속담은 삶에 대한 교훈적인 메시지만을 담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처럼 인간성이나 삶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풍자를 담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 났다’ 같은 속담은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드문 경우를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냉혹한 교육 현실은 더 이상 이 같은 상황을 용인하지 않는다. 이 속담은 ‘강남에서 용 난다’라고 패러디 되고 있다.
한편 속담이 강조하는 가치를 다른 시각에서 부정하는 방식의 패러디도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잘 아는 일이라도 세심하게 주의를 하라는 말인데, 이를 ‘돌다리도 두들겨보면 내 손만 아프다’라고 풍자한다든지, ‘아는 길도 물어 가라’는 ‘아는 길은 곧장 가라’로 패러디한다. 이들은 모두 조심성을 강조하는 일련의 속담에 대해 효율성의 관점에서 이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 비판정신 담아
그런데 이 같은 속담이나 격언의 패러디를 단순히 현대인의 말의 유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 생각으로 우리나라 속담 패러디의 원조(?)는 서산대사가 아닌가 싶다. 그는 옛 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옛 길을 따르지 말라”고 패러디했다. 이를 통해 그는 남의 삶을 흉내 내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우리에게 서산대사가 있었다면 서양에는 로마 교황 알렉산더가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배움은 위험하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적은 배움은 위험하다’, 즉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초래할 위험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속담 패러디는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의 모방본능과 풍자본능에 기인한 것으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이다. 아울러 속담 패러디는 그 시대의 비판정신을 담고 있다. 최근에 대상이 되고 있는 것들은 위에서도 보았듯이 대체적으로 빈부격차, 교육 불평등, 처세의 어려움 등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의 불평등성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주제의 패러디가 더 이상 안 나왔으면 하는데,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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