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생활 은퇴와 함께 각종 사회적 관계가 축소되는 노년기에 가족은 노인에게 직접적이고 가장 중요한 환경이다. 특히 평균수명 연장에 따라 노년기가 길어짐으로써 부부관계는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 자녀들이 출가한 후 부부만의 생활기간이 어느 때보다 길어져, 노년기 부부관계의 중요성은 생애 다른 시점보다 부각될 수 있다.
학계에서도 노년기 부부생활이 노년기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속속 보고하며 노년기의 생활만족도를 가장 잘 예측하는 변수가 부부관계의 질이라는 결과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해 연구원이 실시한 경기도 노인생활실태 조사 결과는 중요한 합의점을 준다. 도내 800명의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배우자가 있는 노인의 노인부부간 가사일 분담정도를 알아봤다. 그 결과 모든 가사에 대해 부인이 주로 한다는 응답이 60%를 상회할 정도로 높았는데, 주로 부인이 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분야는 식사준비(83.4%)였고, 그 다음은 빨래(81.6%), 설거지(78.3%), 물건사기(68.1%), 청소(65.6%), 노인 및 환자돌보기(61.3%), 그리고 손자녀 돌보기(60.7%)순이었다. 즉 식사준비나 빨래는 압도적으로 부인이 한다는 응답이 높았다.
가사노동 중에서 다른 항목에 비해 남편이 하는 비율이 비교적 높은 것은 청소(11.0%)였고, 부부가 함께 가사노동을 분담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분야는 손자녀돌보기(26.5%), 노인·환자 돌보기(25.2%)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사회생활 은퇴로 인해 사회적 관계가 축소되고 가족 내 생활이 강조되는 시점인 노년기에도 부부간 가사일분담은 이뤄지지 않고 부인에게 일방적으로 부과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노년기는 부부 모두 사회적 노동에서 은퇴한 이후 시기이므로 가사노동분담이 이뤄질 수 있는 물적 토대가 갖추어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노인부부에서 가사노동분담은 생각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노년기 부부관계의 질은 노인의 생활만족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따라서 노년기에 부부간 평등한 가사노동분담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여성노인의 삶의 질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심심찮게 이슈로 떠오르는 황혼이혼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노인의 삶의 질을 제고하고 노년기를 보다 성 평등한 시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노년기는 기존의 성역할 관계에 도전하는 시기일 수 있으며, 남성노인의 사회로부터 가정으로의 복귀는 가족 내 성역할 관계에서 중요한 전환을 제공하는 토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러한 기대를 비껴가는 결과가 나타났는데, 남성의 사회적 역할이 축소된 노년기에도 불평등한 가사분담 실태를 보여주었다. 이는 부부 공평성 문제를 일으키며 자칫 여성노인의 정신건강을 위협할 수 있기에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평등한 부부교육은 이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혹자는 신혼부부도 아닌 노인부부를 대상으로 구태여 부부교육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교육은 신혼기 등 특정시점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부생활 전반, 즉 생애 전반에서 필요하다.
노년기는 그 시기가 길어진 만큼 부부관계의 질 개선에 더욱 노력해야 할 시기이다. 매스컴에서 종종 보도되는 황혼이혼의 증가 등을 보면 이러한 노년기 부부관계 질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더욱 공감하게 된다. 현재 건강가정지원센터 등 일부 기관을 중심으로 노인부부교육이 실시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양적인 확대와 더불어 교육대상자들이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사업의 내실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김영혜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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