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이야 모스크의 눈물

관광정책 자문 관련 요르단에 갔다가 가기 힘든 시리아를 지난달 말에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시리아를 다녀와서 바로 글을 쓰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것이 가슴에 들어와서 글을 쓸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쓰던 글을 지워버리게 했을까?’ 한 번에 다 쓰지 말고 그 느낌을 하나씩 쪼아서 마음인 느낌을 표현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써내려가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을 지워버렸다. 마음속에서 울리는 그 울림과 왠지 다른 느낌의 글이 손끝에서 나오는 것 같아서였다.

 

후세인 단두 앞 여인의 눈물

 

하룻밤을 더 지내고 눈을 뜨자, 심상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마이야 모스크(The Umayyad Mosque)’에 있는 후세인 단두(잘린 목)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여인의 모습이었다. 검정색 부크라 사이로 피어난 해맑은 얼굴, 세상에 울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그 여인의 눈에서 맑은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영혼의 샘을 퍼올리는 그들을 보면서 셔터를 누르는 내가 한없이 세속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여인, 그리고 또 다른 여인. 여인들의 눈에서 예외 없이 맑은 이슬이 방울방울 맺히고 있었다. 로마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마지막 눈물을 유리병에 담았다고 한다. 세속적인 생각이지만 부크라를 입은 여인의 눈에서 흐르는 첫 번째 눈물만큼은 눈물을 담는 유리병에 받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다. 시간을 넘어 공간을 넘어 흐르는 눈물. 이건 뭘까? 종교적인 신념? 무섭다면 무서운 일이지만 그보다는 순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맘 후세인은 모하메드 다음의 선지자로 이슬람교 시아파를 추종한다. AD 680년 이라크 바그다드 카르빌라 전투에서 후세인은 온몸이 찢겨진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무덤이 카르빌라에 있다. 이슬람교는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다. 시아파는 이슬람교도의 10%를 차지하며 이라크, 이란이 시아파 교도로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라고 한다. 시아파의 최대 성일인 ‘아슈라’를 취재한 사진이 몇 년 전 보도된 적이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후세인의 아픔을 같이 한다며, 칼로 스스로를 상처 입히거나 채찍으로 자신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쳐서 온몸이 찢어진 모습이었다. 그 후세인의 목이 시리아 ‘우마이야 모스크’에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이 이슬람교 수니파는 후세인을 모하메드 다음의 선지자로 여기고 그를 추종하며 그의 아픔을 받아들인다. 그럼, 부크라 속 여인들의 눈물은 종교적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눈물? 후세인의 온몸이 찢어지면서 죽음을 맞이할 때의 그 통절한 아픔을 함께하겠다는 의미의 눈물? 그럴지도 모른다. 통곡을 하지는 않았지만 소리 없이 맺히는 한 방울의 눈물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종교 넘어 순수한 영혼으로 기억

 

시리아를 다녀와서 요르단에 있을 때 한국과 이란이 아시안 컵 축구대회 4강 진입을 다투는 일전을 치렀다. 연장 전반전 끝날 무렵 새로 투입된 윤빛가람 선수가 골을 넣자 TV 카메라는 이라크 응원단을 비추었다. 멍하니 눈물을 흘리는 사람,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는 사람, 그들이 있었다. ‘이건 뭘까? 간구하는 것이 되지 못했을 때의 애석함, 그런 눈물?’ 그런지도 모른다.

 

설 연휴 중 TV에서 방영된 ‘울지마 톤즈’를 보면서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악어의 눈물이 아니라면,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라도 순수하다. 시리아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에 보관돼 있는 후세인의 단두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여인, 그 여인의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종교적인 갈등을 넘어, 순수한 영혼으로!

 

한범수 ㈔한국관광학회장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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