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값이 폭등하고 서민들이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전세 종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전세제도가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로 이제 그 기능이 사라지면서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세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남의 집을 빌리는 것을 수치로 여겼기 때문에 전세를 포함한 주택 임대차제도가 거의 없었다고 보고 있다.
전세제도는 시중의 유동성이 부족했던 60년대 이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기 어려웠던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집을 담보로 내주고 무이자 대출을 받는 금융제도의 역할을 했으며, 이때는 고금리시대였기 때문에 집주인은 전세금을 은행에 묻어두고 이자를 얻는 수익모델이었다.
집 없는 서민들에게도 전세제도는 자본잠식이 없는 매력적인 임차제도였다. 세입자들은 기존의 전세금에다가 저축을 통해 목돈을 만든 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냈다. 국가적으로 보아도 전세제도는 서민들의 저축률을 높이고, 이를 통해 주택 공급을 늘리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에 주택정책, 주거복지정책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은행이 자금을 운용할 곳이 없어 고민인 시대이다. 이 때문에 집주인이 목돈이 필요하면 전세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주택을 담보로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전세금은 저금리 때문에 은행에 예치해도 수익이 나기 어렵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의 순기능이 사라지면서, 전세보다는 월세가 새로운 수익모델로 등장했다. 이것이 최근의 전세난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전세종말론이며, 우리나라 주택 임대차제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로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전세종말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교육비 지출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전세의 월세전환은 세입자들의 ‘월세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어서 월세 시장이 자리 잡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전세종말론이 올해 전세난을 맞아서 갑자기 대두한 것도 아니다.
전세종말론이 최초로 나왔던 것은 IMF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초였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상초유의 역 전세대란이 일어나자 세입자들이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세종말론이 제기됐다. 또 IMF외환위기 때 주택건설호수가 급감하면서 2001년에 전세값이 폭등하자 월세로 전환하는 가구가 늘었다. 분당의 경우 월세비중이 80~90 %에 달해, 전세종말론의 근거가 됐다.
투기수요가 있는 매매시장과 달리 실수요시장인 전세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세난은 80년대 이후 수급차질이 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전세종말론은 이때마다 설득력을 얻었지만, 아직까지 전세제도는 주택시장의 가장 주요한 임대차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 세입자의 60%, 전국 640여만 가구가 전세로 살고 있다.
올해의 전세종말론이 10년 전과 달리, 실질적으로 임대차 방식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인지는 소형주택 수급이 어느 정도 해소된 뒤에도 월세전환이 지속될지에 달려있다. 올해의 전세난 역시 직접적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이후 주택공급의 부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전세종말이 현실화 될 것은 분명하다. 이 경우 세입자들은 월세지출로 자본축적이 어려워지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당장의 전세난은 물론이고, 서민들의 꿈인 ‘내집마련’을 위해서도 전세제도 안정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하고,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월세시대에 대비, 서민들의 주거복지대책을 강화해야한다. 2월 국회가 우선 다뤄야할 것도 바로 이 같은 전세대책이다. 홍일표 국회의원(한·인천 남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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