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가 진보다

진보(進步)와 보수(保守)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되는데 이를 접할 때마다 혼란스럽다. 단어의 뜻만 보면 진보는 변화나 발전을 추구한다는 의미이고, 보수는 기존의 것을 옹호하고 지키려한다는 뜻으로, 부지불식간에 진보는 적극적 또는 긍정적, 보수는 소극적 내지 다소 부정적 어감으로 다가온다. 과연 우리는 실상에 맞게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자본론을 저술한 마르크스와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마르크스가 활동한 19세기 중반은 아동의 중노동마저도 계약자유라는 미명 아래 옹호될 정도로 자유방임형 자본주의의 폐단이 많았고,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사상을 체계화한 마르크스는 당대의 진보적 학자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덩샤오핑은? 인간의 창의성과 발전 욕구를 빼앗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폐단으로 수 천만 명이 굶어죽었던 중국에서 인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개혁·개방을 이끌며 자본주의적 제도를 도입한 덩사오핑은 분명 진보적인 지도자일 것이다. 자본주의를 반대했던 사람과 자본주의적 제도를 도입한 사람이 어떻게 모두 진보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진보와 보수의 판단 기준이 시대상황과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고 그것이 과연 미래지향적일까? 자칭 진보세력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을 수 있으나, 그 핵심임을 자처하는 부류로 논의를 한정해 보자.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목표는 사회주의 실현임이 명확하다. 믿겨지지 않는다면 가장 진보적이라는 정당의 강령을 한번 읽어보시라. 또한 실제 언행을 보면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의 인권은 외면하고, 북한 세습왕조를 수사학적 기교를 동원하여 옹호하고 있다. 이들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일인가?

 

지난 세기에 실패로 판명된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전제왕조를 옹호하는 것이 진보인가? 이미 낡은 이론과 사상에 매달려 변화를 거부하며 아집을 버리지 않는 이들이 바로 ‘수구꼴통’이며 ‘보수반동’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용어를 선점(先占)당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진정한 진보는 무엇일까? 우리의 목표는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장경제를 유지하면서도 거대해진 경제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관계로 상생하며, 법 앞에 평등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즉, 국민이 공감하는 법과 원칙대로 운영되는 세상이다. 이를 지향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이다. 혹자는 “누구나 바람직한 줄은 알고 있는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이 무슨 진보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때론 “언제 우리 사회가 원칙대로만 된 적이 있느냐? 그게 가능한가?”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판 속에 답이 이미 나왔다. 누구나 바라고 있지만 실현된 적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理想鄕)이 아닌가? 이상향을 향해서 전진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진보가 아닌가?   김용남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