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떠난자리 지하수·토양 유독성 오염물질로 신음
■ 잇따른 오염사고
주한미군의 환경오염사례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 실태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 이후부터이다.
지난 1991년 하남시 하산곡동 신곡천과 일대 논밭 3만3천여㎡에 불순물이 섞인 유류가 흘러들어 농작물이 죽는 등 주민들의 피해가 컸다.
이후 해당 지자체는 16차례에 걸쳐 기름 유출 진원지에 대한 조사 작업을 벌였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다 하남시는 지난 1997년 하남~광주 간 43번 국도 확장공사에 따라 하남시 ‘캠프 콜번’ 정문 앞에서 하수관공사를 하던 중 미군기지 절개지에서 다량의 기름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당시 하남시는 미군에 합동조사를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당했다.
이어 1994년 강원도 원주의 캠프 이글은 변압기 폐유 400여t을 하수구를 통해 유출, 원주시 상수원 보호구역인 섬강 상류로 흘러들었다. 또 1998년 동두천 캠프 케이지 건축폐기물 매립, 2000년 오산 미 공군기지 연료탱크 침수 기름 유출, 2004년 평택 캠프 험프리 헬기 연료공급 송유관 파손 기름 유출, 2004년 포천 바이오넷훈련장 임시주유탱크 관리 부주위로 기름 유출, 2005년 화성 쿠니 에어레인저(매향리 사격장) 표적지 주변 중금속 오염, 2008년 파주 캠프 하우즈 송유관 파손 기름 유출 등 환경오염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의 안보를 담보하는 동맹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미군과의 환경문제에 관한한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정부의 자세와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규정상의 독소 조항으로 인해 오염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우리 정부의 소극적이고 안이한 대처방식은 주한미군기지를 이른바 ‘환경사각지대화’로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도내 반환기지 23곳 중 18곳 토양·수질오염 심각
파주 캠프 게리오웬, 유류오염 기준보다 95배 높아
의정부 에세이욘 석유계총탄화수소 기준치 860배
이에 따라 국방부는 의정부 캠프 홀링워터와 파주 캠프 에드워드의 환경오염정화사업을 마치는 등 경기도내 13개 기지에 대한 환경오염정화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이들 13곳을 포함해 모두 16개 기지의 환경오염정화사업비로 약 1천907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 도내 반환미군기지 78% 오염
이런 가운데 미군기지에 대한 반환이 이뤄지면서 지난 2006년 3월3일 ‘주한미군공여구역 및 주변지역지원특별법’이 제정되고 2008년 2월29일 지원특별법을 개정해 지자체별 미군반환공여지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이후 한미양국간의 SOFA 협약에 의한 주둔지역과 군사훈련목적으로 사용된 주둔지역의 환경오염실태조사가 실시된 뒤 미군공여지에 대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대두됐다.
최근 경북 왜관과 부천 오정동, 부평 등 곳곳에서 유해물질 매몰로 인한 토양오염 등 환경오염문제가 잇따라 제기되면서 주민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경기도내 반환미군기지는 지속공여구역 17곳, 반환예정 미군기지 11곳, 반환된 미군기지 23곳으로 모두 51곳에 달한다. 지난 2003년 SOFA 협약에 따라 반환된 도내 23개 미군기지에 대한 환경오염실태조사가 실시됐고, 이 가운데 18곳에서 토양오염 및 지하수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3년 발효된 SOFA 환경조항은 주한미군이 기지를 우리 정부에 반환할 때 환경오염 조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은진 경기개발연구원 환경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조사 결과 토양 및 지하수가 오염된 대부분의 미군기지들은 토양오염에 대한 대책이 즉시 필요한 ‘토양오염 대책기준’을 초과해 오염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현재 조사 방식은 다소 문제가 있어 오염 기지에 대한 정확한 표본 추출을 통해 치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다이옥신 오염 조사 제외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한·미 합동조사단이 반환된 공여구역의 석유계총탄화수소(TPH), 납, 카드뮴 등 토양오염 환경보전법에 명시된 22개 항목에 대해 오염 여부를 조사한 결과 파주 캠프 게리오웬에서 독성물질인 유류(TPH)의 환경오염은 우려기준(1지역)보다 95배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 파주 캠프 그리브스는 1급 발암물질인 납이 1만275mg/kg이 검출돼 토양오염 우려기준 200mg/kg보다 51배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의정부 캠프 리과디아에서는 유독성이 강한 유기용제로 피부에 닿으면 지방질을 통과해 체내에 흡수돼 뇌와 신경에 해를 끼치는 독성물질인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이 959mg/kg 검출, 우려기준 80mg/kg보다 12배 높았다. 이 밖에 의정부 캠프 시어즈에서는 페놀 0.115mg/ℓ가 검출돼 기준치(0.005mg/ℓ) 보다 23배 높았고, 의정부 캠프 홀링워터는 니켈 255mg/kg과 구리 1천69mg/kg이 검출돼 우려기준(40mg/kg·50mg/kg)보다 각각 6배와 2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엽제 주성분 다이옥신은 22개 조사항목서 제외
미군기지 ‘환경사각지대’ 정부 소극적 대처도 한몫
道“미반환부지 자체 조사… 정화없인 매입 불가”
하지만 한·미공동 환경오염조사에서 고엽제의 주성분으로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된 다이옥신은 토양오양 환경보존법상 조사항목에서 빠져 있다. ‘유류 유출’ 사고가 잦으면서 화학물질 보다 ‘유류 유출’ 과 관련된 검사가 주류였기 때문이다. 의정부 캠프 에세이욘의 지하수 오염 조사결과는 TPH 오염농도가 1천298mg/ℓ로 우려기준(1.5mg/ℓ)보다 860배가 높았고, 벤젠도 0.238mg/ℓ로 우려기준(0.015mg/ℓ)을 15배 초과했다.
이같은 오염 물질들은 토양과 지하수에 흡착되거나 축적돼 농작물 등을 통해 섭취하는 사람 또는 동물의 체내에 들어가 신경계와 장기 등에 피해를 유발하고 직접적으로 농작물의 생육을 저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제2청 관계자는 “지난달 24일 국방부에 미군기지내 고엽제 주 성분인 다이옥신 조사 결과를 요청했으나 국방부는 같은달 27일 조사계획이 없다고 통보했다”며 “경기도 자체적으로 미군기지 주변의 다이옥신에 대한 오염 조사를 벌일 것이며 국방부가 오염 미군기지에 대한 환경오염 정화사업을 완료하지 않으면 해당 부지를 매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미 공동 환경오염조사 당시 반환 미군기지에는 고엽제 의심 물질인 다이옥신이 발견된 바 없으며 환경오염 정화사업이 완료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오염정화 과정에서 관련 징후가 나타나면 환경부와 협의해 다이옥신에 대한 오염 조사를 벌인 뒤 정화 작업을 벌이는 등 적법하게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기도는 주한미군의 고엽제 살포·매립 의혹과 관련해 아직 반환되지 않은 경기도내 주한미군 기지 28곳 주변지역에서 지하수와 토양에 고엽제 주성분인 독성물질 다이옥신이 있는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기획취재부=최원재기자 chwj74@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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