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덩어리’ 정화작업 못 믿겠다
주한미군기지 내 고엽제 매립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는 근본적으로 미군 주둔기간 동안 발생한 오염사고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거나 오염유발시설들을 점검·관리하지 않은 결과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수십년간 미군기지로 인해 고통받아오다 새롭게 드러난 환경오염문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보는 경인지역 내 주둔하는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현황과 피해사례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치유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미군기지가 이전됐으면 먹고 살게나 해 줘야지 고엽제는 뭐고, 유독물질은 뭡니까? 근린공원으로 개발되면 이런 시골 동네에 누가 놀러 오겠습니까?”
3일 오전 미군기지 ‘캠프 하우즈’(반환면적 63만6천9㎡)가 위치했던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미군들이 드나들던 클럽 앞에서 신문을 보던 70대 초반의 K할아버지는 낯선 외지인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듯 가슴에 담았던 말을 던졌다.
“미군이 있었을 때는 먹고 살만 했는데 이제는 암흑의 도시가 됐어”라는 K할아버지는 “미군기지가 오염됐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한데 저 안에서 뭐를 하고 있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캠프하우즈는 반환을 앞두고 오염정화작업이 한창이다.
간판이 떨어져 문을 닫은 술집으로 보이는 건물을 지나 슬럼화된 마을 위쪽에 위치한 기지 곳곳에서는 흙더미와 돌덩이가 쌓여 있고, 전차와 트럭의 주차장으로 사용됐던 공터에는 임시 철제 담벼락이 설치돼 있었다.
각종 중장비가 들어선 담벼락에는 ‘반환받은 미군기지를 깨끗이 치유하여 시민 품으로 돌려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캠프 하우즈의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원은 “오염된 흙을 파서 기지 내부의 정화시설에서 약품처리 및 세척작업을 마친 뒤 다시 복토 작업을 하고 있다”며 “현재 80% 정도 마쳤으며 연말이면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지에서는 지난 2008년 송유관 파손으로 기름 2천ℓ가 인근 하천으로 유출됐으며 2006년 한·미 공동조사단 조사결과 25개 지점에서 석유계총탄화수소(TPH)가 토양오염 우려기준(500mg/kg)을 55배 초과한 2만7천901mg/kg 검출됐다. 또 지하수오염 조사결과 장기손상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인 페놀이 0.353mg/ℓ가 검출돼 우려기준(0.005mg/ℓ)을 70배나 초과했고 TPH도 301.76mg/ℓ가 나와 기준치(1.5mg/ℓ)보다 200배 높았다.
중금속ㆍ기름 범벅 토양 정화 한창
오염조사 여부·작업과정 확인 안돼
고엽제 매립설에 주민들 불안 커져
이처럼 오염된 기지에 대한 정화작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높은 가운데 고엽제 매립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환기지 주변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파주 광탄면 신산리에 위치한 캠프 스탠턴(27만1천171㎡) 내부도 오염된 토양을 세척하는 대형 비닐하우스 5채가 있었으며 기지 곳곳에 흙더미가 쌓여 있다. 또 TPH 등으로 5만7천201㎡의 토양이 오염된 의정부 캠프 카일(14만5천164㎡)도 15t 덤프트럭 4대가 오염된 토양의 약품처리 작업을 마친 흙을 쉴 새 없이 구덩이에 퍼붓고 있는 등 경기북부지역 기지 곳곳에서 토양정화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화작업에 주민들과 시민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당초부터 철저한 오염조사가 선행됐는지와 정화작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명균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다이옥신과 같은 화학물질에 대한 정확한 조사도 없이 개발업자나 자치단체가 치유를 하는 것은 오염치유를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며 “반환된 미군기지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벌이고 SOFA 규정을 개정해 오염 주체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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