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6월 해체 앞둔 용인시청 핸드볼팀

“운명의 시간 다가와도… 우리의 ‘우생순’은 멈출 수 없죠”

누구나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게 되면 두려움과 허무함에 빠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시한부라는 고통마저 희망으로 승화시켜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달 말 해체가 예정된 용인시청 여자 핸드볼팀이다. 코트를 떠나야하는 두려움 앞에 서 있는 이들이지만, 이제 갓 성인이 된 막내 선수부터 한 아이의 엄마인 30대 노장 선수까지 12명의 선수들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코트를 누비고픈 열정 하나 만으로 버텨내고 있다. 이들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로 여겨졌던 ‘최강’ 인천시체육회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 플레이오프(PO) 진출을 확정한 다음날인 8일 오전, 뜨거운 초여름의 햇살을 바라보며 정열을 불태우고 있는 이들을 ‘금남의 집’ 용인시청 합숙소에서 만났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PO 진출을 이뤄냈다.

(김운학 감독)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준 선수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 대회에 나설 때에는 PO 진출을 목표로 달려왔는데, 이제는 목표를 더 높게 잡아 정상에 오르고 싶다.

(김정심 주장) 인천시체육회를 이긴다는 확신은 없었다. 단지 우리가 용인시청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값진 승리를 일궈냈다.

-용인시청은 대회 개막 이전만해도 하위권 팀으로 분류됐었다. 특히 지난해말 해체 통보후 선수단 사기도 많이 떨어졌을 텐데.

(강경택 코치) 감독님이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감독님을 중심으로 하나돼 똘똘 뭉친 것이 좋은 성적의 원인이다.

(명복희) 당초 우리팀은 하위권으로 분류됐고, 인천시체육회 등 다른 팀들이 모두 강팀이어서 시작전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들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체 만큼은 막아보자는 선수들의 투지가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것 같다.

-다름 팀에 비해 적은 인원인데다 상당수 선수가 부상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권근혜) 핸드볼 선수들은 모두 부상을 안고 산다. 나의 경우에는 이미 3년전 전신 류마티스 진단을 받았던 만큼 부상에 익숙하다. 무릎이 안좋은 종숙·민지 언니와 허리가 아픈 민희 언니 등 우리 모두는 지금 아픔에 익숙하다.

(김운학 감독) 골키퍼와 신입 선수들을 제외하면 여유인원이 없다. 이 때문에 부상 선수가 속출할 수 밖에 없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선수 중 국가대표를 지낸 해외파도 있고, 무보수로 뛰고 있는 선수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명복희) 유럽에서 생활할 때 많이 외로웠다. 마침 김 감독께서 불러줘 2009년 후반기 용인시청에 합류했는데, 팀이 이렇게(해체) 돼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용인시청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 같은 것은 없고, 앞으로 잘 됐으면 한다.

(이선미) 지난해 팀 해체가 결정된 후 팀을 떠나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취득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4월 감독님께서 팀이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여러차례 말씀하셨다. 무보수라는 이유만으로 거절을 할 순 없었다. 우린 가족이니까….

(이호신) 고교 졸업을 앞두고 해체가 결정된 지난해 12월 팀에 합류했다. 입단한 팀이 해체가 결정됐을 때 계속 운동을 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인생의 반을 핸드볼과 함께 했기 때문에 새로운 희망을 위해 언니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팀 해체) 운명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불안감이 쌓이면서 고참 선수들은 은퇴를 생각했을 법도 한데.

(김정심) 울산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남편과 부산에서 친정엄마와 함께 있는 딸 지연(생후 20개월)이를 생각하면…(눈물). 후배들 앞에서 울기 싫어 방에서 혼자 운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운동을 그만둘 수는 없다.

(이민희) 이달 말에 해체가 되면 막내든 고참이든 모두 실직자가 된다. 한 순간에 직장을 잃는 것이지만 해체 후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날 그날의 경기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무보수… 전신류마티스 선수 등

부상 공백·선수 부족 악재 딛고

전국 ‘최강’ 꺾으며 PO진출 파란

“시련·눈물 닦아줄 인수기업 나와

모두 한 팀에서 뛸 수 있었으면…”

(김정심) 지원금도 끊겼다. 마지막 지원비에서 남은 것은 식비 뿐이다. 각자 사비를 모아 생활하고 있다.

(손민지) 팀이 어렵다보니 서로를 더욱 위해준다. 말 뿐이 아닌 정말 가족과 같이 지내고 있다. 다음달이 되어도 우리는 흩어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있다.

-팀 해체를 앞두고 후회되는 부분이 있는가.

(김정순) 해체가 코 앞에 닥치니 예전에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이런 아픔은 없지 않았을까 후회된다. 6년간 팀에 몸담으며 지금 만큼만 뛰었더라면 이런 일도 안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쉽다.

-주부 선수가 세명이나 된다. 이 기회에 가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도 하는가.

(이민희) 남편도 두산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어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그만두고 내조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은퇴를 하더라도 좋은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은 것이 지금 생각이다.

(명복희) 모든 선수들이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잘 하고 싶어 할 것이다. 나이가 많아 은퇴하더라도 ‘저 선배, 저 선수 참 열심히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런식의 은퇴는 아니다.

-앞으로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민지) 실업팀에 들어오며 가진 소망은 통장 10개를 갖는 것이었다(웃음). 팀이 해체되지 않고 좋은 조건으로 팀을 인수하는 곳이 생기면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권근혜) 대기업에서 팀을 인수하면 좋겠지만, 지자체가 됐든 공기업이 됐든 팀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그것도 안된다면 용인시청에 남으면서 관내 기업들이 스폰서십을 통한 팀 운영을 통해 우리 모두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친 12명 선수들은 모두의 가슴에 같은 아픔을 갖고 있었지만 여느 젊은이, 주부들과 다를 게 없었다. 단체 기념 촬영 때는 머리 매무새를 가다듬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예쁘게 찍어주세요”라고 청하는 용인시청 선수들의 모습 속에 절망감 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희망의 모습이 더 크게 보여졌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정리=장혜준기자wshj222@ekgib.com

용인시청 여자 핸드볼 팀은?

6월 말로 해체가 예정된 경기도 유일의 여자 일반부 핸드볼 팀인 용인시청은 팀 연혁이 불과 6년 밖에 안되지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 여자 핸드볼의 강호로 군림해왔다.

짧은 연혁 속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핸드볼 명가’ 반열에 올랐으나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운명 앞에 놓이게 됐다.

용인시청 여자 핸드볼 팀은 지난 2005년 3월 국내 6번째 여자실업 핸드볼 팀으로 창단됐다. 지난 2003~2004년 용인 수지고 여자팀을 전국대회 7 연속 우승과 43연승을 일궜던 김운학 감독(49)을 초대 사령탑으로 10명의 선수로 창단한 용인시청은 이 가운데 9명이 은퇴선수 였을 정도로 악조건 속 첫 발을 내디뎠다.

창단 6년 짧은연혁 불구 女핸드볼 명가로 ‘우뚝’

하지만 창단 1년 만인 2006 핸드볼큰잔치에서 4강 돌품을 일으킨 ‘외인구단’ 용인시청은 그 해 고교 최대어인 권근혜(당시 황지여정산고)를 영입, 이듬해인 2007 핸드볼큰잔치에서 정상에 등극하며 여자핸드볼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 대회서 권근혜는 득점상과 어시스트상, 최우수선수(MVP)상을 독식하며 여자 핸드볼의 ‘샛별’로 떠올랐다.

2008시즌과 2009시즌 연거푸 핸드볼큰잔치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용인시청 팀은 그러나, 지난해 11월 용인시청의 대대적인 직장운동부 구조조정으로 인해 팀 해체가 결정, 올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시한부 운명’을 맞이했다.

이런 가운데 출전한 ‘2011 SK핸드볼 코리아리그’ 여자부에서 하위권 팀으로 분류됐던 용인시청은 “팀 해체만은 막자”는 눈물겨운 투혼으로 지난 7일, 국내 대회 25연승을 달리던 최강 인천시체육회를 꺾고 6승1무2패로 선두에 올랐다. 일찌감치 3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용인시청은 별다른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오는 7월 초로 예정된 PO에는 무적 팀으로 선수단 자비를 들여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용인시청의 팀 해체에 국내 체육계가 안타까워 하는 것은 한국 여자핸드볼이 실업팀이라야 고작 7개에 불과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단골 입상으로 효녀 역할을 톡톡히 해왔고, 그 중에 용인시청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용인시청은 타 팀보다 4~6명이 적은 12명의 선수 가운데 김정심, 이민희, 명복희 등 국가대표 출신 3명의 주부선수와 만성 전신 류머티스를 앓고 있는 가운데도 이번 대회서 득점·어시스트 1위에 오른 권근혜를 비롯, 절반 이상의 선수들이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새로운 희망을 향해 슛을 던지고 있다.

지원금이 끊긴 상황에서 겨울철 트레이닝복과 스포츠 음료대신 보리차를 마시며 운동화 끈을 조여매는 용인시청 선수들은 팀 창단의 산파역을 맡았던 경기일보에 “모두 함께 운동만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관내 기업과 독지가들의 성원을 부탁했다.  황선학기자 2hwangpo@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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