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과 가계 부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했다. 이번 기준금리 인상은 지난 해 7월 이후로 다섯 번째이며, 그 결과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이었던 연 2.0%에서 연 3.25%로 올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상향조정한 것은 물가안정을 위한 것이다. 1년 전과 비교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금년 들어 줄곧 4%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인 3.0±1%의 상단을 넘어가는 수치다.

 

더욱이 앞으로도 경기상승으로 인한 수요 증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등에 비춰 높은 물가상승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물가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정책대응이라 하겠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 등 금융기관의 대출금리도 동반 인상될 전망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린 가계의 이자부담이 당연히 늘어나게 될 것이다. 특히 지난 3월말 현재 가계의 금융기관 대출금 잔액이 752조원에 달할 만큼 가계부채가 계속 크게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소득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대출을 받은 가계는 추가적 이자부담이 힘겨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경제 전체를 보는 거시적 관점에서는 금리인상으로 가계의 대출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보다도 은행, 상호저축은행, 신협,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보험회사 등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가계가 빌린 대출원금이 계속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가계의 금융기관 대출금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말의 185조원에서 지난 3월 말에는 752조원으로 4.1배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2.3배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가계부채가 얼마나 빠르게 늘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 해 146%로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임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방국가들에서 동 비율이 낮아진 것과 달리 계속 상승세를 보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기업의 과도한 부채가 큰 원인이 되었다. 최근에 경험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상환능력이 낮은 가계의 주택대출이 과다했던 것에서 비롯됐다. 또 아직도 진행 중인 일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정부의 채무가 과다한 것에 대한 금융시장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기업, 가계, 정부 등 어떤 경제주체를 막론하고 상환능력에 비해 과도한 부채를 지게 되면 해당 경제주체의 파산은 물론이고 국가경제 전체, 나아가 글로벌 경제까지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떤 경제주체든 빚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는 것은 금리가 이자부담을 감당할 만큼 낮고 그 금리수준에서 자금을 쉽게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빚 권하는 사회’라는 말이 있듯이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부채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금이 필요할 때 낮은 금리로 손쉽게 빌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금융중개기능이 잘 작동한다는 것으로 그 자체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난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빚 권하는 사회’라는 말이 현진건 작가의 소설 제목인 ‘술 권하는 사회’에서 유래됐듯, 빚은 술과 같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약이지만 이를 벗어나면 독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다섯 차례에 걸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국내경기의 지속적 상승속에서 소비, 투자 등 총수요를 조절함으로써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에 주된 목적을 두었지만 국내 경제의 위험요인 중 하나인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가계는 금리인상으로 인해 부담이 더 커지겠지만 이번 금리 인상으로 인해 추가적 가계 빚이 발생하지 않고, 그로 인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위기를 방지할 수 있다면 이는 우리나라 전체 경제의 안정, 즉 거시건전성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윤면식 한국은행 경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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