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시인의 아내)와의 사랑과 삶은 곧 내 삶의 문학적 결실”
고은(78·안성시 공도읍) 시인이 작품활동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연시집 ‘상화시편:행성의 사랑’(창비 刊)을 발표했다. 지난해 4월 연작시 ‘만인보’를 완간한 지 1년 3개월 만에 발표한 신작이다. 시집의 주인공인 상화. 14살 연하 시인의 부인 이상화 교수(64·중앙대 영문과)다.
민주화운동의 투사와 학자의 옷을 번갈아 입으며 우리 역사와 정서, 사회 문제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펼쳐온 시인에게 이번 시집은 확실한 외도(?)임은 분명하다.
지난 9일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만난 고은 시인은 기자를 납치해 부랴부랴 서울 을지로로 향했다. 차 안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배가 고플 정도로 대화가 이어졌다.
노벨문학상 관련 질문은 하지 않았다. 시인을 ‘광적인 노벨문학상 올가미’에 가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기론 노벨재단은 수상 후보국의 주요 언론 보도까지 다 분석한다고 한다. 또 대중적으로 나서서 행동하는 사람에게 우호적이지 않다고 하니 그저 ‘시에 미쳐 사는’ 고은 시인을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 최선일듯 했다. 인터뷰는 시작도 끝도 사랑이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지난해 연작시편 ‘만인보’ 30권 완간 후 다음 작품은 뭘까 궁금했는데.
그래, 그동안 잘 지냈고. 애기를 건강하게 잘 크지? 어디 사진좀 보여줘봐. 오늘 내가 일정을 착각했네. 미안하지만 서울 가면서 얘기하면 좋겠는데 괜찮겠나. 차에서 하는 인터뷰는 나도 난생 처음이야.(하하)
난 따로 날 정해서 쉬는 거 없어. 나는 일이 놀이야. 난 밥도 맛있고, 술도 맛있고, 일도 맛있어. 책 읽는 것도 놀이야. 즐거워. 나는 아직도 책을 보면 떨려. 작년에 ‘만인보’ 내고 나서 이번에 ‘상화시편:행성의 사랑’, ‘내 변방은 어디 갔나’ 2권을 같이 냈어. 쉴 새가 없어.
-팔순을 내다보는 시인의 ‘사랑타령’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
책 나온 거 보고 의외래. 전혀 기획하지 않았던 시집이야. 그저 내 머릿속에 있던 것을 정리하고 싶었어. 사랑이 갚아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아내한테 엄청 갚아야 해. 한마디로 빚쟁이지. 빚쟁이라 그런지 아직도 쓸 게 많아. 최소 한 권은 더 낼 예정이야. 요즘 아내가 집에서 슬쩍슬쩍 시집을 읽어 보는 것 같은데 별 말이 없네.(하하)
-시집 시작부터 거침없이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그 연세에 그런 로맨스가 가능할까 싶다.
나는 태아였어. 상화라는 자궁 속의 태아였지. 이 사실은 내가 그 자궁 속에서 나와 이 누리의 갖가지 세파를 무릅쓰며 노쇠한 뒤에도 퇴화될 수 없는 태고의 기억에 잠겨 있을 원점의 태아인 것을 뜻하지. 상화의 사랑 없이는, 상화와의 삶이 없이는 나는 두 가지가 불가능했을 것이야. 그 두 가지는 지금까지 내 삶과 문학적 결실이지. 곧 아내는 절대적인 존재, 태아의 나를 태 밖에서 어루만지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인 셈이지. 아내가 없었으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테지.
-아내에 대한 사랑은 한창 연애 중인 연인들처럼 열정적이고, 대범해 보인다.
아내하고 다니면 다 좋아.(하하) 모든 장소가 다 잔치가 이뤄지는 곳 같아. 우리는 친해 아직도. 손잡고 다니는데. 우리는 우리에게 빠져 있으니깐. 1983년 결혼해서 30년 가까이 같이 사는 그 짧지 않은 일상의 사소한, 티끌 같은 시간들의 집적 자체가 감동이었지. 이번 시집에는 사랑에 행복해하고 애달파하고 깨달음을 얻는 내 모습이 담겨 있어. 표지에 실린 그림도 직접 내가 그린 그림인데 몇 해 전 아내 생일에 그린 그림이지.
-진정한 로맨티스트다. 결혼 전 프로포즈는 어떻게 했는지.
옛날에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손으로 편지 써서 주고 그랬지 뭐. 난 아직 사랑한다고 말도 못했는데. 언젠가는 사랑한다고 말할 날이 오겠지. 안 그래?(하하)
-작품 가운데 ‘자전거’를 읽어보면 결혼식 모습이 나오는데 당시 이야기좀 해주세요.
신학자 안병무씨의 수유리 집 뜰에서 올린 결혼식을 시로 써봤어.(하하) 1983년 5월 5일 주례 함석헌, 축도 문재린, 축시 문익환, 축사 이문영. 백낙청, 집전 리영희 교수 등 극히 제한된 지인 100여 명만을 초청해서 올린 결혼식이었지. 당시 정보기관에서도 결혼식 당일에야 알고 달려 왔었어. 아내는 결혼으로 대학 당국에서 면직 여부 대상이었으나 대학 담당 안기부 직원의 권고로 무사하게 넘어갔지.
문학인생 최초의 사랑시집
‘상화시편:행성의 사랑’ 발표
사랑에 행복하고 애달파하며
깨달음을 얻는 자화상 담아
사랑이 갚아야 하는 것이라면
난 아내에게 엄청난 빚쟁이
아직 쓸게 많아… 한권 더 낼것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이 많지? 대학에서 강의하고 퇴근하는 아내를 데리러 자전거를 끌고 정거장에 나가던 일, 원고지 열 장을 쓰고 나면 아내에게 달려가 임신한 배를 쓰다듬던 기억 등을 써봤는데. 시인의 하루도 다를 바가 없어.
-결혼 29년차 베테랑 부부지만 간혹 싸우기도 하시죠.
우린 둘다 싸우는 재능이 없어. 안 싸워. 싸울 것 같으면 어느 하나가 사라져버려. 내가 술이 코가 삐뚤어지게 먹고 들어와도 아내는 잔소리가 없어. 하지만 잔소리를 안 한다고 끝이 아니지. 언젠가는 꼭 들먹인단 말이야.(하하) 조심해야 하거든. 오늘도 점심 먹다 김치 국물이 묻어 학교 앞에 가서 와이셔츠 새로 사 입었어.
-요즘도 술 많이 하세요.
아이고 예전처럼은 못 마시지. 많이 마시면 책을 못 읽고 일도 못해. 옛날엔 진로를 많이 먹었지. 오래된 동반자야. 진로는 내 청춘의 무덤이지. 요즘 술은 좀 싱거워 맛이 없어.(하하) 오랫동안 뜻을 같이한 백낙청 교수랑 가끔 마셔. 그리고 아내와 가끔 주종에 상관없이 반주 정도 간단히 하지.
-시인이게 안성은 어떤 곳인가.
군산이 고향인데 결혼 직후 고려대 이문영 교수가 소개해서 안성에 내려왔어. 그 당시엔 안성군 공도면 마정리였지. 신접살림을 여기서 시작했는데 벌써 30년이라 세월 참 빨라. 안성 살기 참 좋아. 공기 좋고.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로 만든 ‘만인보’ 30권도 제2의 고향인 안성에서 완성했으니 더 특별할 수밖에 없지. 이사갈 생각도 없어.
-시인의 고향인 군산이나 제주도에서는 생가 복원, 문학관 건립 등의 정성을 쏟고 있는데 정작 경기도와 안성시는 매년 가을, 노벨문학상 발표날만 떠들썩할뿐인데 서운하지 않은가.
서운하긴 뭘. 각종 초청강연에 해외행사에 참석하기도 바빠. 일년에 10개 넘는 해외 초청행사가 있는데 그 중 절반도 다 소화를 못할 정도야. 나는 나팔만 가지고 노는 사람이 아니잖아. 책 읽고 공부하고 쓰기 바빠.
-사랑이 도대체 뭡니까.
사랑은 지금이지. 사랑은 ‘하였다’도 ‘하리라’도 아니라 언제나 사랑은 ‘한다’야.
강현숙기자 mom1209@ekgib.com
사진=하태황기자 hath@ekgib.com
WHO?
1933년 8월 1일 전북 군산시 미룡동 138번지 출생
본명 고은태(銀泰)
1952년 불교 승려가 됨. 법명 일초(一超). 12년 동안 수행
1958년 시 ‘폐결핵’으로 데뷔
1960년 첫 시집 ‘피안 감성’ 발표
1963~66년 제주도 금강고등공민학교 개교, 교장 겸 국어 미술 교사 재직
1974년 작가의 사회적·역사적 책무를 절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대표
대학에 출강하기 시작한 이상화(李相華)와 만남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 혐의로 투옥
1983년 5월 5일 이상화와 결혼. 풍운의 독거생활을 끝냄
2001년 세계한민족작가연합 회장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
서울대 초빙교수·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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