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을 실천해 공공부문 근로시간 조정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8-5제’ 도입이 국민건강과 자기계발 기회 확대, 생산성 향상, 여가산업 발전, 일자리 증가 등 순기능이 많다며 사회 전반적인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박 장관은 "하루아침에 일률적으로 바꾸기 어렵지만,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유연근무제의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추진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다소 회의적인 것 같다.
우선, 과연 아침 8시까지 출근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아침에 조금 서두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한 몸’만 챙기면 되는 근로자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이 있는 맞벌이 가정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출근시간이 대부분 1시간 이상인 수도권에 거주하는 근로자의 경우 8시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집에서 7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일반적인 보육시설의 정규 운영시간은 ‘오전 7시 반’에 시작된다. 또한 초등학교의 경우도 보통 오전 8시 이후에 등교가 가능하다. 부모가 8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7시에 집을 나서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언제나 그랬듯이 고용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돌봄 책임이 없는 (남성)근로자’를 모델로 하는 것이 안타깝다. 고용정책이 보육 및 교육정책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8-5제’ 도입은 단순히 출퇴근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보육시간과 교육시간과 연동된 아주 중요한 사회적 의제임을 잊지 말자. 이것은 근로자 개개인의 ‘유연근무제’의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8시에 출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돌봄 책임이 있는 근로자’ 뿐만아니라 ‘돌봄 책임이 없는 (남성)근로자’도 ‘8-5제’에 회의적인 것 같다. 오후 5시 퇴근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 관행을 생각해 볼 때 ‘8-5제’ 도입은 출근시간만 1시간 앞당겨 근로시간을 더욱 ‘장시간’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이다. 꽤 현실적인 우려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연간 근로시간이 2천 시간이 넘는 유일한 나라이다. 2011년 6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1인당 총 근로시간은 173.1시간이라고 한다. 공식통계 보다 실제 근로시간은 더욱 장시간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8-5제’ 도입이 가져올 순기능이라고 언급되는 자기계발 기회 확대, 생산성 향상, 여가산업 발전, 일자리 증가 등은 ‘8시 출근’ 보다는 ‘5시 퇴근’이 지켜져야 더욱 빛을 발할 텐데 근로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약 1년 전 ‘장시간근로 관행 개선과 근로문화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 합의문은 2009년 6월 9일 “근로시간 및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시킨 이후 1년 동안 논의한 결과이다. 요지는 고비용·저효율의 장시간근로 관행으로부터 저비용·고효율의 생산적 근로문화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2020년까지 연간 근로시간 1천800시간대로 단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이를 위해서는 보육 및 교육시스템과의 연동성을 고려해 ‘돌봄 책임이 있는 근로자’에게도 적용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장시간 근로 관행이 개선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정형옥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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