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의 혀

혼란과 혼돈의 시대인가, 가야할 길과 방향은 찾지않고 진흙탕 싸움에만 골몰한다. 보수와 진보의 간극은 더 벌어지고 계층간 세대간 갈등은 커져만 간다. 양극화의 골 또한 깊어만 가고 선진국의 꿈은 멀어져가고 있다.

 

말로는 소통과 통합과 공생을 부르짖지만 안으로는 자기 몫 챙기기에 혈안이다. 문제가 터지면 내 탓보다 남의 탓을 앞세우는데 두 눈을 치켜 뜬다. 일이 발생하면 사태 수습과 원인을 파헤쳐 재발 방지에 모든 역량을 쏟는게 순리인데 손익계산과 자리차지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사람이 고릴라와 차이가 나는 것은 혀의 길이에 있다. 사람은 혀를 통한 대화와 타협으로 고릴라에 비해 상호간에 생기는 분쟁을 1만5천분의 일로 줄인 반면, 혀가 짧은 고릴라는 승자독식의 사회가 되었다. 요즘 우리사회가 고릴라를 닮아 가는 건 아닐까? 예산철만 되면 세비 인상에는 여야 모두 찰떡궁합을 보인다. 철면피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는 건 한순간이고 그 때만 지나면 싹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선언에 난리법석이다. 민심의 활화산처럼 등장한 안풍(안철수)으로 뒤통수를 호되게 맞고 있다. 뒤늦게 자기성찰이니 현실직시니 하는 ‘반성문’을 쏟아내고 있지만 자업자득이고 자가당착이다. 국민들의 여론은 내년 총선에서 70%이상 물갈이를 원한다. 299명의 국회의원 중 210명 가량은 낙제점이라는 얘기다. 신뢰를 잃은 정치와 정치인에게 국민의 준엄한 심판은 당연하다.

 

생산성을 높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소모전은 또 웬일인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다.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의 정책 결정 행위가 급기야 현직 시장 사퇴로 이어지며 행정적 경제적으로 막대한 낭비를 초래했다.

 

혹자는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합일의 경지를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면서 가장 피곤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오던 길 되돌아가는 것이고 하던 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치르지 않아도 될 일, 안 해도 될 일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은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21세기 들어서 세계는, 모든 분야와 질서에 있어서 패러다임은 물론 프레임 자체가 바뀌어가고 있다. 지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디지로그 시대다. 빠른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느림의 미학을 함께 추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또 풍요와 승자만이 선(善)이 될 수 없고 함께 어울려 공존하는 생태계의 질서가 존중되는 세상이다.

 

하드웨어가 중시되던 시대는 스피드가 생명이었지만 소프트웨어 시대로 넘어오면서 스피드는 콘텐츠와 디자인을 겸비해야만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이미 세계의 패권은 유럽과 미국을 거쳐 동양으로 넘어오고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가 향후 세계사의 흐름에서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대한민국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당당하게 등장하려면 지금의 시스템과 마인드, 컨셉으로는 안 된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도민의 삶의질 향상을 위해 머슴처럼 동분서주하는 도정책임자(김문수지사)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얼빠진 공무원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고 국가운영은 기본부터 매뉴얼을 새롭게 짜고 시스템도 확 뜯어 고쳐야 한다. 국민들도 세계최고의 대학진학률에 걸맞는 수준 높은 정신과 문화, 행동양식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바탕을 확고히 한 뒤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진 리더십을 발휘할 때만이 진정 세계가 대한민국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정석기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사무부총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