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파워 리더

산업화, 민주화 과객(過客) 그간 메뚜기의 한 철 잘 먹고 잘 살았죠? 아니라면 겸손을 가장한 오만이고, 그렇다고 하면 실체적 오만인데 이길 수 없는 질문이다. 두 축은 항성이었다. 주변의 위성 그룹들이 쳐놓은 그물코는 너무 촘촘하고 질겼다. 권력(정치)의 세계에선 같은 사안을 놓고도 서해를 바라보는 구주류가 하면 감동이 없고, 동해에서 떠오르는 신주류가 하면 국민들은 환호하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눈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귀는 익숙한 것을 좋아 한다. 따라서 산업화, 민주화 세대는 그간 역사의 물결에서 수명을 다 했다고 여겨진다. 그들의 공헌과 희생은 이미 모든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 아니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 에 달성한 세계 개도국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나이 드니 엉덩이가 무거워 진다’는 평가 또한 피해갈 수 없다. 전관예우 덕분에 5년간 60억, 22개월에 22억원의 수임료를 받았다. 그 중 한 푼이라도 불우 이웃돕기 성금 냈다는 흔적은 없다. 그들은 스스로 진보적, 양심적, 지성적, 도덕적이라는 의식의 프레임에 갖혀 있다.

 

지금까지 그들은 연못에 사는 고래였다. 우물 안의 국지성 시각으로는 고래도 연못 생태계도 모두 공멸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스마트 파워 리더는 기성 정치인과 다른 서민성, 참신성, 봉사성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식이 뒤틀렸거나 헌법을 초월하는 오만함과 혀는 너무 빠르고 권위를 담을 그릇이 없는 ‘경조부박’한 지도자는 안 된다.

 

정치학적으로 우파의 부패와 타락이 좌파의 구호를 정당화 시키고, 좌파의 독선과 도그마(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가 우파의 가치를 입증해 주는 법이다. 서민들에게 피눈물의 희생을 떠안긴 어느 권력 측근의 저축은행 부패의 결정판이 전자의 예라면 어린 학생에게 계급투쟁의 민중사관을 주입시키는 의식화 교육은 후자의 예이다. 정치란 서로 다른 의견 사이에서 공통분모 즉 ‘커먼 그라운드(Commor ground)’를 찾는 중용의 미학이다. 따라서 정치인의 말은 대중의 환호와 분노 및 야유를 촉발한다. 이 때 환상과 배신감은 괴물의 자양분이 된다.

 

‘보수는 분열로 망하고 좌익은 자충수로 망한다’는 말이 있듯 서울시 곽노현 교육감의 선의에 의한 2억 원은 여기에 해당하는 궤변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는 지정학적으로 사자의 심장과 여우의 두뇌가 필요하다. 요즘 사회 현상을 보면 민주화란 미명으로 잔디를 잘못 깎으면 집값 떨어진다는 논리로 잡초가 1m까지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공권력이 아니었나 싶다.

 

광우병 광풍, 제주 강정마을, 한진 중공업 희망 버스 등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법정에서 “김일성 수령 만세”를 외쳐대도 판·검사는 법의 희화화(戱畵化)와 사법부에 대한 능멸을 묵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 역사를 창조할 지도자는 상생하겠다는 이벤트를 언론에 홍보할게 아니라 상생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공직자에게 있어 건전한 가치관과 윤리 도덕은 삼손의 ‘머리털’과 같다. 따라서 21세기는 스마트파워의 덕목과 잔잔하지만 울림이 깊은 지도자를 원한다.

 

김기연  여주점동초등학교 교장 경기교총교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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