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참 시끄럽다. 안철수 원장의 개인재산 사회기부를 두고 아름다운 기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정치적 야심을 가린 야비한 행동이라는 사람도 있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개그맨 최효종을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한 것을 두고 명예훼손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는 입장과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이 대치된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게임중독 개입을 위한 셧 다운제 도입에 대해 그 실효성에 대한 입장이 분분하다. 국가적으로는 한미 FTA에 대해 국가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는 입장과 독이 든 사과라는 입장으로 팽팽히 기 싸움을 하고 있다.
왜 이런 입장 차이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느껴지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대편의 행동이나 주장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데 기인한다. 상대편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깎아 내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상대편이 낮아지면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의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하여, 자신이 더욱 높아지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낮추는 일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다. 그러나 주변의 땅을 깎아 내서 사람들의 위치를 낮추면 자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부정과 불신이 지배하는 사회
자신의 사회현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해석하다보면 삶이 어려워진다. 작은 일에도 금방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다. 지나가던 차량이 경적을 울리면 화부터 난다. ‘깜짝이야. 어떤 사람이 경적을 이렇게 울려!’ 그러다가 앞을 보니 깊은 웅덩이가 있음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말로 하지’라고 불평을 터뜨린다.
모든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사회적 문제는 불신이 깊어지고 이해심이 낮아진다. 불신이 깊어지면, 나 외에 혹은 나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는 적대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나아가서 자신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가만히 서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수용할 수가 없다.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게 된다. 이것을 치유하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은 만만치가 않다.
관용과 긍정의 미덕 발휘해야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상대편의 의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은 상대편보다 더 성숙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개그맨 최효종에게 강용석 의원이 “참 재미있게 보았다. 한편으로는 생각해 볼 것도 많았다. 국민에게 좋은 정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을 했으면 어떨까? 안철수 원장의 사회 기부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주는 모범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더욱 나은 복지 방안을 통해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희망을 주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를 위한 지구촌학교에서는 다름이 가장 큰 장점이 된다고 한다. 다르기 때문에 기죽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배움의 근간에 두기 때문에 더욱 풍부하게 배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다문화사회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수용할 수 있는 관용의 덕이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십팔사략에 나오는 말이다. 큰 강물이 강물이 되는 이유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고 받아 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시대의 큰 흐름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과 사회 현상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차명호 평택대학교 상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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