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전세계 외신들은 사망 소식을 긴급 타전하며 북한의 상황에 주시했다.
특히 대북 지원이 많은 중국은 김 위원장의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이례적으로 중국최고지도부가 김 위원장 조문에 집단적으로 나섰다.
중국은 한국, 일본, 미국,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빠진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공식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방면에서 북한을 도울 것이라는 의지를 나타냈다.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체제로 전환을 앞두고 세계 각국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월 정권교체를 앞둔 중국과 북한의 2012년 교류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식량·석유 등 대규모 지원…對北영향력 확보
北·中교역 한해 60억 달러 ‘남북교역의 3배’
■ 불안한 ‘김정은 체제’…중국 든든한 버팀목으로
중국이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로 바뀌는 북한에 큰 힘을 실어주며 후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북한을 친중 후계체제로 만들어 동북아 세력구도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중국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통’ 시진핑 10월 집권 예상…양국 우호 강화
北, 중국에 절대적 의존…남북관계 ‘걸림돌’ 작용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김 위원장 사망 이후에도 대북 영향력을 확보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도하면서 중국의 대북 후견체제의 강화 조짐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중국은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돕기 위해 식량, 석유 등을 대규모 지원키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의 식량부족분이 35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군량미 지원과 함께 북한의 전력난이 심각한 점을 감안, 최대 20여만t에 달하는 석유를 무상으로 공급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의 안정은 각 측의 이익에 부합하며 중국은 줄곧 힘 닿는 선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원조가 북한 경제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오는 10월 시진핑(習近平)의 집권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시 국가부주석이 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서 북한을 담당하고 있음에 따라 향후 북한의 김정은 체제 안정과는 무관하게 양국 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南北 교역은 줄고… 北中 교역은 급증…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기댈 수 있는 곳이 중국 밖에 없기 때문이다.
KOTRA에 따르면 북중 교역액은 2003년 10억달러, 2008년 20억달러, 2010년 30억달러 대에 진입했고, 지난해에는 60억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남북 교역액의 3배가 넘는 수치다.
남북 교역을 제외한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지난해 9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52.6%였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06년 56.7%, 2008년 73%였고 2010년에는 처음으로 80%를 넘어섰다.
양국 접경지역의 도로, 항만 등 인프라 건설과 정유, 제철 등 산업 협력으로 범위와 규모가 확대되고 있어 새해에는 100억달러 도달의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반면 남한과 북한의 교역액은 천안함 북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유승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경제의 중국 의존도 심화는 당장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남북 경제 상호 보완성에는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높아지는 북한의 중국 의존이 불안한 이유
북한의 중국 의존도 완화와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한국이 ‘김정은 체제’로 전환된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한국이 천안함, 연평도 사태에 발목이 묶여 한반도 문제 해결에 소외될 수 있는데다 중국이 북한 후견국으로 입지를 굳히게 될 경우 남북 관계의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나 중국 경제의 침체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더 긴밀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장기적으로 한반도에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어 중국의 대북전략을 자세히 연구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명해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절대적인 것은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남북경협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는데 남북중 협력 등의 형태로 경협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INTERVIEW
“北, 중국 의존도 83%…中도 부담”
체제 공고히 다지며 ‘中개혁방식’ 받아들일 것
신종호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
Q 북한 경제의 대중 의존도 높아질까
A 북한의 대중의존도는 83%에 달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점진적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있지만 ±1~2%로 90% 이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도 북한이 크게 의존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미국, 일본 등 주변국의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중국으로 종속화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북한과 중국이 서로 믿지 않고 있는데다 북한 자체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을 싫어한다.
Q 김정은 체제로 전환 중국의 자세는
A 중국은 김정일 사망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 중국이 김정일 사망 공식발표 2~3시간 전 미리 소식을 접한 것으로 중국 학자들로부터 들었다. 중국은 김정일 체제, 김정은 체제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에서 세대로 이동한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지난 2009년 이후 중국이 북한 문제와 핵 문제를 다른 문제로 구분하고 대응한 것과 같다.
Q 중국의 대북지원은
A 미국과의 영양지원이 협상됨에 따라 식량 지원은 당연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경제난 해결을 위해 4월까지는 지원 규모를 점진적으로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지원 규모를 공식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너지 자원 분야에서도 중국과 북한의 상호 수출ㆍ입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서로 간의 요구에 의해 오랫동안 이뤄지고 있어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자원을,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하는 기존 형태가 유지될 것으로 판단된다.
Q 중국이 북한의 개혁 이끌까
A 북한이 체제 위협을 받지 않는 선에 한해 대외자본 확보, 특구 형태 개발 등 위험요인이 없는 중국의 개혁 방식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개혁개방이라는 표현보다 중국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만큼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명칭을 통해 인민생활개선에 힘쓰는 등 새로운 지도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Q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은
A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소외되는 선택이 아닌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지금처럼 북한을 자극하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경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중국이 대한, 대북, 대미의 주도권을 지금처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김정일 사망 정보 획득에 실패함에 따라 이제는 위기관리모드로 들어가 한반도 문제를 개선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비핵화, 연평도 사건 등으로 대북정책을 엎어버리는 꼴을 만들기보다 평화와 안전이 중요하다고 표명하며 인도적 지원사업을 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필요하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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