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한반도에 넓게 드리운 구름층처럼, 2012년은 모두가 예측하기 쉽지 않은 격동의 한 해가 될 듯하다.
점점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자살 급증 등 사회병리 속에서 치러내야 하는 두 번의 선거는 우리의 삶에 적잖은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운은 상승할 수도 또는 암울해질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정치의 회오리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년을 시작하는 지금, 이런 차원에서 서둘러야 할 것은 작년 말 이미 심각한 문제로서 지적받았던 사안들에 대하여 구체적 대안을 찾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학교폭력은 학령층 아동들과 그들의 가족이 당면한 문제이며, 미래의 부모가 될 젊은 층도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모두의 고민이다.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위기로 내몬 학교폭력의 심각성은 작년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대구 수성구에서 발생하였던 중학생의 자살사건은 학교폭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학생을 구제하여 줌에 있어, 학교가 전혀 기능을 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학교폭력 대안 마련 시급
학교에 배치되었다고 알고 있었던 전문상담교사나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존재는 유명무실한 제도로서만 존재할 뿐, 학교폭력 피해자가 체감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되지 못하였다.
학교에서의 아이들의 안전이 보다 더 극단적으로 위협받는 사건은 바로 인화학교 사건일 것이다. 이 사건은 교사가 학생의 안전을 조직적으로 위협하는 경우 그 누구도 사실상 개입이 불가능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동시에 학교라는 조직이 어디까지 문제를 은폐하고 왜곡할 수 있는지 그 극한을 확인케 하였으며, 나아가 사법제도조차 피해자의 편이 될 수 없음에 국민들을 분노케 하였다. 결국 비등한 여론은 장애인과 아동에 대한 새로운 양형기준을 도입하게 만들었고 다양한 사법절차의 개선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화학교의 허가 취소만으로는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학교 전반의 안일한 태도를 바꾸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심심찮게 보고되어 온 유사 성폭력사건과 폭력사건들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해당 학교나 교사에게만 책임을 묻고는 흐지부지되어버리는 현상 때문이다.
그 어떤 폭력에의 예방교육도 막상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배타적인 조직환경으로 유명한 학교라는 조직은, 만일 담장을 열어젖히는 경우 오히려 긁어 부스럼만 만들 것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대구 수성구의 중학교나 인화학교의 문제는 그들 단위학교의 문제일 뿐, 나머지 학교 종사자들은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현실의 벽만을 한탄하고는 뒤돌아선다.
아이들 안전이 교육의 근본
폭력이라는 문제는 당사자인 개인만 책임지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특히 안전해야만 하는 학교에서 폭력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보다 총체적인 교육 부실의 문제인 것이다.
학교는 구성원들의 안전에 가장 민감하게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이다. 학생의 안전에 관한 무한 책임이 학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해자나 그 부모, 혹은 해당 교사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처럼 학교는 철저히 문제를 외면한다.
정부는 이제 학교법인과 학교 조직의 총체적 부실을 심도 깊게 분석해보아야 한다. 왜 조두순은 학교 교정에서 자유로이 피해자를 물색할 수 있었는지, 왜 마산의 윤간사건에서는 피해자만이 학교를 떠나야만 했던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이야말로 교육의 근본인 것이다.
이 수 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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