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세상을 만들고 바꿔요"
김정자 (재)성정문화재단 이사장은 후학양성에 30년의 외길을 걸었다.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였던 그는 음악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꿈을 향한 발판을 마련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 80년대 난파소년소녀합창단 창단을 시작으로 성정청소년교향악단, 성정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성정뮤지컬단, 성정장학회 등을 만들었다. 또 성정전국음악콩쿠르를 통해 유능한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에 힘써왔다.
다들 ‘왜 돈이 안 되는 문화에 손을 대냐’고 했다. 김 이사장은 돈이 성공의 잣대는 아니라며 조금은 힘들고 다른 인생의 길을 살아온 자신의 삶도 보람차다고 자부했다.
그러면서 성정의 30년 역사는 척박한 메세나 토양 위에서 외부의 도움없이 찬연한 문화예술의 꽃을 피워낸 놀라운 ‘창조의 역사’이며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꿈으로 청소년을 키우는 ‘감동의 역사’라고 정리했다.
음악을 향한 끝없는 열정으로 지난 30년간 성정문화재단을 이끌어왔고 인생의 절반을 음악에 올인, 앞으로도 한눈팔 자신이 없다는 김 이사장. 성황리에 치룬 서른 잔치 후 김 이사장을 만나 소감과 2012년의 비전을 들어봤다.
-성정문화재단 창립 30주년 기념 음악회가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감회가 남달랐을 거다.
한 해, 한 해가 소중했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고 정치적인 시련도 겪어야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귀를 열고 그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신념으로 달려왔다. 그 신념이 서른 살이 됐고 축하공연을 성대하게 열게 돼 감개무량하다.
-김대진, 정명화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악인들이 대거 참여해 그 어느 음악회보다 수준높은 무대로 관심이 집중됐다.
30주년인만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성정의 출발지는 수원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악분야의 종합예술단체로 성장한만큼 서울에서 최고의 음악인들과 함께 했다.
수원시립교향악단 김대진 지휘자의 경우 성정콩쿠르 심사를 맡았던 인연도 있고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는 ‘멋과 재능, 그리고 기교의 연주가’로서의 최고의 연주로 무대를 빛냈다.
이번 음악회의 백미는 재단의 서른 살 생일을 맞아 벌이는 흥겨운 잔치에 부응하기 위해 준비한 헌정곡 ‘Festivai Gloria’였다. 어린이합창단이 주도하고 여기에 오케스트라와 난타가 가미된 헌정곡은 신명난 축제 분위기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공연 후 헌정곡을 듣고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다”는 칭찬을 듣고 참으로 기뻤다.
-게다가 ‘2011 제4회 공연예술경영상’ 대상까지 수상했다.
개인적으로 상장에 연연해 하는 성격이 아니다.
문화의 암흑기인 80년대 난파소년소녀합창단을 시작으로 90년대 성정청소년교향악단, 성정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성정뮤지컬단 등을 만들어 음악꿈나무를 키워왔는데 이는 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단 한가지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30년 동안 외부의 공적인 도움없이 한결같이 청소년 음악발전과 후학양성에 힘써온 점을 높게 평가받은 것 같다.
-1981년 어린이 40명으로 구성된 난파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성정문화재단을 설립한 이후 무려 30년동안 사비를 털어가면서 음악 꿈나무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쳐왔다. 세월이 갈수록 그 열정은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얼마 전 우연히 SBS 스페셜 ‘기적의 하모니’를 봤다. 우리나라 유일의 소년 수형자 수용시설인 경북 김천 소년교도소에 강도·살인·방화·특수절도 등 중범죄를 저지른 만 23세 미만의 수형자들이 장기 복역 중이다.
악보는커녕 계이름조차 몰랐던 수형자들은 가수 이승철의 지도로 합창연습을 하게 되면서 난생 처음 노래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이런 기적의 하모니를 바라고,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열정을 멈출 수 없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문화적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30년간 비영리재단으로서 역량을 쌓아올릴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뭐 특별한 비결은 없다. 모르는 사람들은 문화사업 자체가 ‘깨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꼬아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벌기 좋았던 80년대 그 열정으로 사업을 했으면 ‘떼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했다. 온 세계가 출산율 높이기 전쟁 중이다. ‘인구=국력’인 시대로 곧 사람이 있어야 장(場)이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숫자가 있어야 영향력이 생기고 말발이 먹히는 세상이 왔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종족 1호로 지목될 정도로 한국과 한국인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인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데 음악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음악으로 사람을 만들고,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욕심이 오늘날 성정을 만든 비법이라면 비법일 것이다.
-그 만큼 어려움도 컸을텐데.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시작했다.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었고 모델을 만들었다. 그러나 보니 엄청난 시간투자와 함께 몸이 힘들었다. 특히 시대를 노래한 작곡가 홍난파(1898~1941)의 이름이 친일논란에 휩싸이면서 난파 자체가 위축되면서 합창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재단 식구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다.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사명감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지금까지 달려온 것 같다.
-성정문화재단을 통해 수많은 학생들이 음악을 배우고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을 꼽으라면 누군가.
지난해 12월 초 프랑스 툴루즈에서 폐막한 제3회 앙드레 나바라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문태국(17)군이 지난 2006년 수원 일월초등학교 6학년 때 성정 전국음악콩쿠르 대상을 받은 학생이다.
피아노 전공자 어머니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아버지 사이 태어나 만 4살 때부터 첼로를 잡은 문 군은 2007년 독일 올덴부르그 청소년 국제콩쿠르 1등, 차이콥스키 청소년 국제콩쿠르 3위(2009년), Irving M. Klein 국제 현악 콩쿠르 3등(2010) 등 수많은 콩쿠르를 휩쓸었다.
성정으로선 숨은 보석을 찾아낸 것 같아 뜻깊게 생각한다.
-이사장에게 있어 음악은 어떤 존재인가.
음악전공자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을 심취한 사람도 아니다. 음악자체가 꿈은 아니었다. 음악은 내게 ‘사명’이었다.
음악을 들으면 추억을 되새길 수 있고 눈물이 흘러 가슴속에 아름다운 생명이 새싹돋듯 한다. 그런 음악을 통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
난 분명 지휘자나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지휘자, 연주자들이 환상적인 공연을 선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고 또 훌륭한 음악가를 발견해 후원·양성하는 것이 내 주된 일이다. 그러니깐 난 음악가를 찾는 탐험가일 수도 있다.
-탐험가로서의 생활,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30년 전 시작된 작은 꿈이 씨앗이 되고 이제는 무성한 나무가 되었으며 앞으로 숲으로 무성해지길 바라면서 30년을 지나 또다른 30년을 준비해야 한다.
한 나라의 문화적 성숙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사는지의 여부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앞으르도 음악의 힘, 문화의 힘으로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문화의 가치를 나누는 세상을 열어가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최일선에 서 있을 것이다.
대담=박정임 문화부장 bakha@kyronggi.com
정리=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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