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유의 풍속 잊지 말아야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특히 농사와 관련된 세시풍속이 발달하여 왔다.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주기에 반복하여 행해지는 농경문화시대의 세시풍속은 세시(歲時) 또는 월령(月令) 등으로 불린다.

 

세시풍속은 달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한 해를 기준으로 월별로 배분되어 있고 매 절기 다른 풍습을 만들어 즐겨왔다.

 

이렇게 독특한 세시풍속이 발달하게 된 것은 공동체로서의 농경문화는 농업 생산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가족 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며 또한 가족을 넘어선 기본 사회단위가 마을이었다.

 

그래서 농촌마을에는 여러 측면에서 공동체적 요소가 있는데 전통적으로 마을 농민들을 연결해왔던 것은 두레·품앗이 등의 노동적이었다.

 

이와 같은 공동조직은 노동의 강도를 높이고 오락이나 유흥을 동반하여 마을 사람들의 유대와 결속을 다지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시풍속 역사는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의 추석·단오·유두와 삼국유사의 대보름 기록 등은 모두 삼국시기에 이미 세시풍속의 원형들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오늘날의 세시행사로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의 주기는 농경의 주기와 관련되기 때문에 1년을 보름간격으로 24절기를 나누었으며 봄은 양력 2월, 음력으로 정월부터 시작되었다.

 

달마다 행하는 풍속으로 먼저 정월 초하루 설날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만나는 이웃 간에 덕담을 나누며 친지들을 찾아 세배하고 떡국 등 음식을 대접하였다.

 

설날부터 열이틀 동안은 12간지(干支)에 따라 일진(日辰)을 정해 갖가지 금기가 해지는 풍습도 있었다. 입춘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같은 글을 대문간에 써 붙여 봄을 맞이했다. 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부스럼을 깨물고 귀밝이 흉을 마시며 남에게 더위를 팔아서 한여름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소망도 있었다. 저녁에는 보름달이 뜰 무렵 달맞이를 즐겼다.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도 마을공동체인 동신제가 집중적으로 열리며 지신밟기, 쥐불놀이, 줄다리기, 널뛰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들이 펼쳐진다.

 

완연한 봄이 다가오면 집안에 묶여 있던 청춘 남녀들이 산과 들로 나가 꽃구경을 하고 청명(淸明)이 되면 논밭 갈이가 시작되며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한식날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올린다.

 

5월5일 단오절에는 수리지 떡과 밀전병을 준비하고 여자들은 창포로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들은 씨름을 즐긴다. 삼복(三伏: 초복, 중복, 말복)에는 보양식 등으로 더위를 피하고 7월 7일 칠석(七夕)에는 칠성고사를 올리며 농민들 제출의 마당이 형성되는데 이를 ‘호미씻이’라 하고 망혼 일(亡魂 日)이라 하여 조상의 넋을 위로하는 날이기도 하다.

 

8월 15일 추석(秋夕) 한가위에는 한해의 풍연농사를 감사드리고 조상에 대한 성묘를 으뜸으로 생각한다. 강강술래, 거북놀이 등을 즐기며 송편 같은 음식을 먹는다. 10월에는 상달 고사라 하여 집안의 신에게 제를 올리며 곳에 따라 마을 당굿을 치기도 한다.

 

11월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고 죽 물을 대문간에 뿌려 악귀를 쫓기도 했다. 섣달 그믐은 제석(除 夕)이라 하여 묵은세배하며 집안 구석구석에 불을 밝히고 묵은해를 보낸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세시풍속이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발전으로 이름조차 잊혀 가는 실정이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전통적인 문화나 생활양식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대표적인 명절만이라도 우리의 세시풍속을 즐기고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얼과 정이 가득 담긴 전통문화와 풍속, 고귀함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예부터 세시풍속은 달과 관련

1년을 보름간격으로

24절기 나눠 풍속 즐겨

정월 초하루 설날에는

조상에게 차례 지내고

이웃 간에 베풀면서 나눠

급격한 산업화로 잊혀가는 지금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풍속

고귀함 잊지 말았으면

임영춘 안성시농업기술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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