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아이와 함께 보는 살아있는 미술교과서

남성도 마찬가지지만 결혼한 여성이 미술을 접할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대입준비와 동시에 미술교육은 뒷전인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미술강좌를 수강하거나 미술 단행본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는 한 미술과는 평생 담을 쌓은 채 ‘그림맹(盲)’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각종 여성패션지에서 미술정보를 다뤄주는 것은 다행이다. 화가들의 비범한 이야기나 가십성 미술 기사, 그리고 세련된 편집디자인과 상품광고디자인을 통해 은연중 여성들의 미적인 감각을 계발해준다. 생활 속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여성패션지이고 보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미적 안목을 키워주는 것은 8할이 여성패션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여성패션지가 미술을 다루는 방식은 미술 전문서나 논문이 미술을 다루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미술 전문서와 논문에서는 미술사나 작품의 조형성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어렵고, 딱딱하다. 반면에 여성패션지에는 작품의 조형성보다 작가나 작품의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쉽고, 재미있다. 따라서 독자 맞춤형 기사를 작성하는 잡지의 생리상 여성패선지도 흥미 위주로 미술을 다룰 가능성이 크다. 작품의 조형성까지 음미하게 자극하는 생산적인 독서 효과를 기대하기란 역부족이다.

미술 접하기 어려운 주부들

 

여기서 대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유아용 그림책이다. 3세부터 9세 안팎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은, 말 그대로 적은 분량의 글과 풍부한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아지 똥’, ‘노란 우산’, ‘만희네 집’, ‘까마귀 소년’, ‘네모상자 속의 아이들’ 등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따뜻한 교감을 나누는 국내외의 그림책은 성인용 소설 못지않게 작품성을 인정받을 만큼 탄탄한 내용과 얼개를 갖추고 있다.

 

또한 아이들의 감성 계발에 필요한 다양한 그림풍을 구사한다. 수채물감, 수묵, 유채, 아크릴릭, 크레용, 파스텔 같은 재료나 소묘, 사실화, 극사실화, 그리고 판화나 전통적인 민화 스타일 등 다채로운 표현 방법으로 풍부한 시각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기법도 콜라주, 모자이크, 몽타주, 오려붙이기, 긁기, 번지기 등 여러 가지다. 초중고 미술교과서에서 배운 모든 재료와 기법이 스토리텔링을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돼 있다.

 

이런 다양한 그림 재료나 표현 기법을 눈여겨 보면서, 우리나라와 세계의 명화를 소개한 각종 미술 관련 그림책을 가까이 하면 미술에 대한 애정지수는 급상승한다.

유아용 그림책, 훌륭한 교과서

 

오랫동안 미술을 멀리했던 여성들도 막상 아이가 생기면 교육차원에서 그림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동화를 읽는 어른의 모임’처럼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보는 눈을 개명시켜주는 대표적인 단체도 있다. 각 지역마다 여성 회원들이 모여서 좋은 그림책이나 동화를 읽고 토론하는데, 이때 내용뿐만 아니라 그림에 대한 비판적인 읽기도 함께 이뤄진다. 그림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표현된 이야기의 완성도, 그림풍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각 장면과 장면의 유기적인 관계, 표현기법 등을 꼼꼼히 따져가며 본다. 미술은 멀리 있지 않다. 유아용 그림책은 살아 있는 미술 교과서다. 아이에게는 감성 개발을, 엄마에게는 미술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유아용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그림책을 찬찬히 살펴보자. 내 아이의 건강을 위해 각종 먹을거리를 세세히 따져보듯이, 그림책도 형상이며 표현기법 등을 곱씹어 보면 된다. 미술을 다시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곳에 ‘그림맹’에서 미술 애호가로 거듭나는 지름길이 있다.

 

정 민 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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